[기자수첩] 리베이트와 ‘언더독 효과’
상태바
[기자수첩] 리베이트와 ‘언더독 효과’
  • 박예슬 기자
  • 승인 2015.05.10 0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산업부 박예슬 기자

[매일일보 박예슬 기자] 경제학 용어로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있다.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underdog)가 이겨 주기를 바라듯이, 경쟁에서 뒤지는 사람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우리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는 국가들끼리의 경기라도,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지고 있다면 은근히 열세인 쪽을 응원하게 되는 현상 등이 이에 속한다.

선거철이 되면 어느 정당이나 ‘위기’라며 도와달라고 읍소하는 것도, 바로 이 언더독 효과를 노린 전략이다. 선량한 인간의 ‘측은지심’에 의한 이 묘한 현상은 정치·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널리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제약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논란에서도 언더독 효과의 그림자가 보이고 있다. 얼마전 한국제약협회에서 리베이트 의심 업체에 대해 자체 투표를 실시, 해당 업체에 대해 경고를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중소 제약사들의 반대가 빗발쳤다.

제네릭(모조) 의약품을 주로 판매하는 중소 제약업체들은 대형업체에 비해 제품 자체에 대한 경쟁력 확보 및 차별화를 꾀하기 어렵기 때문에,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고는 영업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리베이트 의심 업체를 ‘투표’ 형식으로 ‘색출’ 한다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도 있다. 다만 중소 업체들에 대해 리베이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언더독 효과를 노린 주장이다.

물론 영세한 업체로서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드는 의약품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하거나 특별한 마케팅 전략을 세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대한 돌파구가 ‘현행법’을 어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대다수의 중소, 영세 업체와 자영업자들이 오늘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성실히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도입 의지를 갖고 있는 중소업체들을 위한 당국의 지원도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중소 제약사들이 대형 제약사의 CP 시스템을 적용하고 싶어도 비용 등의 여건으로 인해 감히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아가 당국은 중소 업체들도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제네릭 약가 시스템의 정비와 유통체계 변화도 중장기적으로 검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수십 년째 뿌리깊게 지속돼 온 리베이트 근절 분위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대세다. 부당한 거래 과정에 대한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돼 왔다. 중소-대형업체를 막론한 업계와 당국의 굳은 의지와 현실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