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출신 명장 정걸장군 재조명 학술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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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출신 명장 정걸장군 재조명 학술대회 개최
  • 윤형록 기자
  • 승인 2014.12.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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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군의 핵심 판옥선 건조, 임진왜란 승리의 숨은 주역

[매일일보 윤형록 기자]  고흥군(군수 박병종)은 16세기 조선의 명장이자 임진왜란 승리의 숨은 주역인 고흥군 출신 정걸장군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오는 12월 18일(목) 오후 2시 고흥문화회관 김연수실에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고흥군이 주최하고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주관하여 최인선 교수가 진행하게 되며, 순천대학교 이 욱 교수의 「정걸장군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 가문」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정해은 선임연구원의 「행주대첩의 전쟁사적 의의와 정걸 장군의 역할」,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의 「임진왜란 해전과 정걸장군」에 대해 발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방대학교 노영구 교수의 「일본 측 자료로 본 조선수군의 무기계와 정걸장군」, 최인선 순천대학교 교수의 「정걸장군 관련 유적과 유물에 대한 검토」에 대해 추가 발제가 있으며, 제장명 해군사관학교 석좌교수, 정판성(전대사대부고 교장역임), 정종역 압해정씨 광주종친회장이 발제에 대한 토론에 참여할 계획이다.

정걸장군(1516~1597)은 불우헌 정극인의 5세손으로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후동에서 1516년(중종 11)에 태어나 30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시 도순찰사 이준경의 군관이 되어 해남과 강진 등에 침몰한 왜구를 평정 하였으며, 이 공로로 해남 남도포 만호, 부안현감이 되어 왜구로부터 서남해안 일대를 지키게 되었다.

이후 11년간 함경도의 온성과 종성의 부사가 되어 여진족의 침입을 막았으며, 조정에서 그 공을 인정하여 1572년(선조 5)부터 경상우수사, 전라좌수사, 전라병사, 전라우수사 등 남해안을 지키는 장군으로 임명하게 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 장군은 이미 78세의 노장이었으나, 전라좌수군의 조방장이 되어 전라좌수사인 이순신을 도왔는데, 임진년 2차 출병 시 흥양에서 전라좌수영의 관할인 각 진과 보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며, 한산도대첩 시 전라좌수영의 거북선에서 싸우다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또, 부산포 해전 시 녹도만호 정운과 함께 적선 100여척을 부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그 후 장군은 충청수사가 되어 행주대첩 시 수세에 몰리던 권율 장군과 관군 및 의병들에게 화살을 2척의 배에 실어 응원하였고, 창의사 김천일, 경기수사 이빈 등과 더불어 강화도와 선유도, 용산 일대를 장악하여 왜군이 한강을 넘지 못하도록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해 장군은 서거하시는데, 같은 해 그의 아들인 영광군수 정연과 손자인 낙안군수 정홍록도 왜군과 싸우다 흥덕에서 전사하니 3대가 나라를 위한 충절이 가득하다 할 것이다.  

호남절의록과 족보, 신도비, 유허비, 묘비 등의 기록에는 장군이 해상전투에 쓰이는 무기를 만들고, 판옥선을 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히 영조 대 어사 이이장이 판옥선을 보고 배가 오래되어 쓸모가 없으니 해체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영조가 판옥선은 명장 정걸장군이 만든 것이니 보존하라고 한 기록이 있어 판옥선이 장군의 고안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고흥군 관계자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정걸장군의 생애와 업적, 임진왜란 당시의 활약, 유적 및 유물 소개 등 장군과 관련된 사료와 자료를 집대성하여 살펴보고 조선중기 정걸장군과 고흥군이 가졌던 의의를 다시 한 번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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