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임금 안올려줘도 되니 일하게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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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임금 안올려줘도 되니 일하게만 해주세요”
  • 한아람 기자
  • 승인 2014.11.27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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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사회부 한아람 기자

[매일일보 한아람 기자] 지난 10월 7일. 압구정동의 S아파트에서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한 한 경비원이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인 것이다.

이는 출퇴근길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사회 경비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전국 25만명의 경비노동자들 중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이며, 이들은 생애 마지막 직장이라는 생각에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근무했지만, 이들의 절실함은 ‘을의 설움’으로 돌아왔다.

본연의 업무인 경비 외에 분리수거와 청소, 택배 정리 등을 떠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으며 초과근로, 야간 근로에 대한 수당은커녕 최저임금을 100%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내년부터 아파트 경비원들이 최저 임금 100%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정부의 대책은 15만명의 경비노동자들을 대량해고 위기로 내모는 꼴이 됐다. 정부의 정책대로 임금을 100%보장하게 되면 인건비가 증가해 아파트 입주회 측에서 경비노동자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60세 이상 고령자 고용지원금의 지원기간을 2017년까지 3년 간 연장하고 관련 예산으로 3억원을 편성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에 따라 분기당 1인당 18만원을 지원할 경우, 지원 인원이 전체 해고예정인원의 6%인 3194명에 그친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는 정책이 되는 것.

심지어 정부 대책에 따른 대량해고 우려에 일부 현장에서는 “임금을 올려주지 않아도 되니 해고만 면하게 해달라”는 안타까운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야당은 아파트 경비원 해고방지 예산을 최소 285억원으로 증액 편성할 것을 주장했다. 이 경우 지원대상은 3만명으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언 발의 오줌누기”라며 “예산을 통해 민간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사업 예산 394억원, 크루즈 활성화 사업 예산 4억원, 창조경제 구축 사업 예산 197억원, 4대강 관련 평화의 댐 치수증대 사업 예산 331억원…. 이는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박근혜표’예산인 정부사업 예산과 4대강 후속 예산이다.

정치권에 묻고 싶다. 이 같이 ‘억’ 소리 나는 예산 목록에서 과연 힘없는 사회 약자를 위해 책정된 285억원이 그리 많은 금액인지, 또 국민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4대강 사업으로 들어가길 원할지 아니면 어느 한 경비원의 생애 마지막 일자리 보호를 위해 쓰이길 원할지 꼭 한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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