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문 닫은 기업들…“투자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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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 문 닫은 기업들…“투자는 언제”
  • 이한듬 기자
  • 승인 2014.08.1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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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한민국 개조하자 ③ 미래먹거리 못찾는다

신성장동력 투자 저조로 현금만 쌓여…사내유보금 5년새 두배
기업 총수 부재·정부 지지부진한 규제 완화도 기업 투자 발목

[매일일보 특별기획취재팀] 최근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기업의 신규 투자를 촉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요를 활성화시켜 민생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영상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정의 첫번째 해결 과제로 “소비와 투자여건을 개선해서 가계소득을 늘리고 기업투자를 촉진, 확실한 내수활성화 효과가 나타나도록 정책을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0대 기업 사내유보금 516조원

박 대통령이 기업의 투자 촉진을 직접 강조한 이유는 현재 대기업들이 미래 신성장부문에 대한 투자를 유보한 채 현금만을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10대 그룹 81개 상장사가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은 무려 515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사내유보금은 5년 전 271조원에 비해 두배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사내유보금이 가장 많이 늘어난 기업은 삼성으로 5년 새 86조9000억원에서 182조4000억원으로 95조4000억원(109.8%)이 증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41조2000억원에서 113조9000억원으로 72조6000억원 늘어나며(176%) 2위를 차지했고, SK가 34조4000억원에서 58조5000억원으로 24조1000억원(70%), LG가 32조6000억원에서 49조6000억원으로 17조원(52%)이 늘어났다.

4대 그룹이 10대 그룹 사내유보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8.3%에 달했다. 주요 기업들은 엄청난 돈을 금고에 쌓아둔채 투자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70~80년대 개발시대에는 기업들이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이 없어 은행 대출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특혜인 시대였다.

기업들이 이처럼 사내유보금을 쌓는 이유는 대내외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신성장동력으로 자금을 쏟아부을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에 진출했던 사업영역에서도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스마트폰 판매 호조에 힘입어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기록했으나, 올 2분기에는 영업이익이 7조원대로 내려 앉는 등 흔들리는 모습이다.

여기에 중국발 저가 스마트폰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하반기에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체 매출이 스마트폰 사업에 의존하는 불균형한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미래먹거리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당장 스마트폰을 대체할만한 사업을 찾지 못해 고심하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는 미래먹거리인 자동차 전자제어와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2012년 현대오트론을 설립하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0년 이상을 내다봐야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대중공업은 주력이었던 조선플랜트부문의 실적 부진으로 영업적자가 1조원을 넘기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다.

총수 부재로 미래투자 결단 못해

특히 총수의 부재는 기업들의 투자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래먹거리에 대한 투자는 과감한 결단을 필요로 하지만, 오너경영을 토대로 발전한 국내 기업들의 특성상 오너의 부재는 이 같은 결단을 내리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통신 등 국가 기반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SK는 각 국가 고위층과의 친분을 쌓아야 하는 등 해외 진출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최태원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호주의 석유유통회사인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지분 인수 참여를 포기했다.

또 SK텔레콤과 SK E&S가 각각 추진하던 ADT캡스와 STX에너지에 대한 인수합병(M&A)도 무산됐다.

SK이노베이션의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지난 2011년 브라질 광구를 매각해 거액의 현금을 확보했으나 1년 이상 투자를 못하고 있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공백이 1년 넘게 장기화하면서 올해 상반기 중단하거나 보류한 투자 규모가 4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초 계획했던 투자액 1조3000억원 중 35%에 해당한다.

한화 역시 김승연 회장의 주도하에 지난 2012년 5월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80억달러 규모의 비스야마 신도시 건설 사업을 수주한 뒤 추가 수주를 기대했으나 현재 김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추후논의가 부진한 실정이다.

 
정부 차원 미래먹거리 지원 미흡

선진국과는 달리 정부의 지원이 미흡한 점도 기업들이 미래먹거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초반 들어 ‘셰일가스’를 일찌감치 미래먹거리로 정하고 이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셰일가스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지난 10여년 동안 50% 가량 감소, 제조업의 경쟁력이 덩달아 올라가고 올들어 월간 실업률이 6%대로 낮아지는 등 경제활성화의 순기능을 하고 있다.

올초에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00억달러 규모의 가스 분야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 지난 달 40년 간 유지했던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푼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성장’을 기치로 태양광 등 에너지 분야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정부의 독려를 믿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지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전세계 태양광,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기업들이 수년간의 적자를 기업 스스로 떠안아야 했다.

삼성은 2010년 태양전지ㆍ자동차용 전지ㆍLEDㆍ바이오 제약ㆍ의료기기 등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었으나 태양전지, 자동차용 2차전지, LED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다 지난해 진전되는 모습이다.

LG그룹도 LG화학 미국 배터리 공장이 완공후 생산이 지연되다 지난해 가동을 시작했고, LG이노텍의 경우 지난 2009년 LED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다 올들어 흑자전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연료전지, 해양에너지, 풍력발전 등에 뛰어들려 했으나 주력사업인 철강업이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한화도 태양광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는 녹색성장산업에 대한 장기적 지원을 위해 지난 2009년 1621억원을 출자해 총 8276억원 규모의 신성장동력 펀드를 조성했으나, 대부분이 미래먹거리에 투자한 기업들을 지원하기 보다는 우량기업의 재무안정을 위해 사용된 사실이 지난해 국감에서 지적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규제완화 오락가락 행보

규제완화에 대한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도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올해를 규제 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손톱 및 가시’를 뽑겠다고 선언했으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잠시 주춤했다.

새 경제팀 출범과 7.30 재보선이 마무리되면서 규제완화 드라이브가 재가동 되는 듯한 모습이지만, ‘기업소득환류세’ 등 규제 성격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소득환류세란 앞으로 발생할 당기 이익 중 투자와 임금, 배당으로 쓰지 않은 금액의 일부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투자와 배당, 임금 등 더 많은 돈이 가계로 흐르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이나 기업에 대한 압박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규제를 풀어 신규 투자를 유도한다더니, 사실상 투자를 강요하기 위해 규제를 도입한 꼴”이라고 토로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업소득환류세제 도입 목적이 세수 확보가 아닌 만큼 기업들의 국내외 투자 확대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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