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부, 사상전향 공작 희생자에 배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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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정부, 사상전향 공작 희생자에 배상해라"
  • 박원규 기자
  • 승인 2014.05.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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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정희 정권 당시 사상전향 공작에 견디지 못하고 옥중 사망한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우리 정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사상전향 제도는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에서 비롯했으나 한국전쟁 이후 좌익수에게 물리적 폭력을 동원, 사상을 바꾸는 전향서를 작성해 공개 선언하도록 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교정당국은 전향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급식, 면회, 운동시간 등에서 불이익을 주고 가석방 기회를 원천 차단했다. 때리고 고문하면서도 몸이 아프다고 하면 꾀병이라며 치료를 거부했다. 가족을 동원해 전향을 권유하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 초 정부는 대전, 대구, 광주, 전주 등 교도소에서 전담반을 구성해 체계적인 전향 공작을 벌였다. 폭력 전과가 있는 일반 재소자를 앞세워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전주교도소에 수감된 권오금씨는 심각한 고혈압 상태에 있었는데도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수시로 불려가 사상전향 심사를 받았다.

권씨는 1972년 2월 옥중에서 고혈압에 의한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나 10시간 동안 방치됐다가 끝내 숨졌다.

최한석씨, 김대석씨, 이상율씨 등도 각각 국보법이나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나 보안감호소에 수감돼 사상전향을 강요받다가 권씨와 비슷한 이유로 사망했다.

이 중 가장 젊었던 김씨는 사상전향 공작에 시달린 끝에 옥중에서 수건으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유족들은 2010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정부가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했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받아냈다.

이어 2012년 12월 이 사건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5부(이성구 부장판사)는 희생자 4명의 유족 8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총 5억9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상전향 제도는 수형자들의 사상적 판단에 대한 표현을 강제하는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 행위"라며 "정부는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사상전향 제도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오다가 1998년 7월 폐지됐다. 이후 전향서 대신 준법서약서를 작성하는 제도가 신설됐으나 2003년 7월 이 역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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