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들도 “세월호 보도 참담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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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기자들도 “세월호 보도 참담하고 부끄럽다”
  • 이선율 기자
  • 승인 2014.05.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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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막내기자들에 이어 반성문…앞서 SBS에서는 “죄송합니다” 기자칼럼 나와

[매일일보 이선율 기자] KBS 막내 기자들이 지난 7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반성문이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MBC 소속 현직기자들도 세월호 보도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내용의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12일 오전 MBC 보도국 30기 이하 기자 121명은 성명에서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다”며 “세월호 취재를 진두지휘해온 전국부장이 직접 기사를 썼고, 보도국장이 최종 판단해 방송이 나갔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이 보도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장관과 해경청장을 압박'하고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청와대로 행진'을 했다면서, '잠수부를 죽음으로 떠민 조급증'이 아니냐고 따졌다” 며 “심지어 왜 중국인들처럼 '애국적 구호'를 외치지 않는지, 또 일본인처럼 슬픔을 '속마음 깊이 감추'지 않는지를 탓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또 MBC 기존 보도에 대해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라며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다”고 비판했다.

기자들은 “한마디로 '보도 참사'였다”며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으며 가슴을 치며 머리 숙인다”고 사과했다.

이어 “해직과 정직, 업무 배제와 같은 폭압적 상황 속에서 MBC 뉴스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며 “MBC가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맞설 것이며, 무엇보다 기자 정신과 양심만큼은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중파 3사 중에 하나인 SBS의 경우 집단 반성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진도 현장에 취재기자로 내려갔던 박원경 기자가 지난 9일 “기자의 특권을 포기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칼럼형식 기사를 통해 "기자에게는 '질문'이라는 특권이 있었으나 진도에서 그 특권을 살리지 못했다"며 "이제와서 덧없는 생각이지만 질문을 통해 더딘 구조작업 상황이 제대로 전달 되었다면 정부당국자들이 더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세월호에 남아 있던 생존자들을 무사히 구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자책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원경 기자는 해당 기사 말미에서 "다만 미안하다는 말로만 머물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또 묻겠다"고 기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MBC기자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습니다. 세월호 취재를 진두지휘해온 전국부장이 직접 기사를 썼고, 보도국장이 최종 판단해 방송이 나갔습니다.

이 보도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장관과 해경청장을 압박'하고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청와대로 행진'을 했다면서, '잠수부를 죽음으로 떠민 조급증'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심지어 왜 중국인들처럼 '애국적 구호'를 외치지 않는지, 또 일본인처럼 슬픔을 '속마음 깊이 감추'지 않는지를 탓하기까지 했습니다.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였습니다. 한마디로 '보도 참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해경의 초동 대처와 수색, 그리고 재난 대응체계와 위기관리 시스템 등 정부 책임과 관련한 보도에 있어, MBC는 그 어느 방송보다 소홀했습니다. 정몽준 의원 아들의 '막말'과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 등 실종자 가족들을 향한 가학 행위도 유독 MBC 뉴스에선 볼 수 없었습니다. 또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찾아간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빠짐없이 충실하게 보도한 반면, 현장 상황은 누락하거나 왜곡했습니다.

결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축소됐고, 권력은 감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 됐습니다. 

더구나 MBC는 이번 참사에서 보도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결과,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는가 하면, '구조인력 7백 명' '함정 239척' '최대 투입' 등 실제 수색 상황과는 동떨어진 보도를 습관처럼 이어갔습니다.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겐 큰 혼란과 불신을 안겨줬으며, 긴급한 구조상황에서 혼선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이점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해직과 정직, 업무 배제와 같은 폭압적 상황 속에서 MBC 뉴스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을 신성시하는 저널리즘의 기본부터 다시 바로잡겠습니다. 재난 보도의 준칙도 마련해 다시 이런 '보도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MBC가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맞설 것이며, 무엇보다 기자 정신과 양심만큼은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MBC 기자회 소속 30기 이하 기자 121명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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