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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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 김철홍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3.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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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매일일보  |  요즘은 맞벌이하는 부모가 거의 절반으로 그 부모는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

육아정책연구소가 0~12세 자녀를 둔 부모 대상 설문에서 ‘언제 돌봄공백을 느꼈나’라는 질문에 24.0%가 ‘초등학교 1학년’을 꼽았다. 0세(29.7%), 1세(24.6%)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어린이집·유치원은 퇴근 무렵까지 돌봐주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입학 후 하교 시간이 일러 맞벌이 부모 입장에서는 설문 결과처럼 아이가 늘 걱정된다. 특히 워킹맘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학부모의 육아휴직이 아이가 1학년일 때 많아지는 이유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이 워킹맘의 무덤’이라는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그동안 시댁이나 친정엄마 찬스를 쓸 수 있는 여건이 아니면 도우미 등 별도의 손을 빌려 어쩔 수 없는 돌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편치않은 아이 돌봄은 부부간의 잦은 다툼과 여성의 경력 단절, 저출산 등 사회적 문제를 불러왔다.

이에 정부는 2023년 1월 기존 ‘돌봄교실’과 ‘방과 후 학교’를 통합한 개념의 ‘늘 봄처럼 따뜻한 학교’(늘봄학교) 도입 방안을 확정했다. 3월에는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에서 채우지 못한 돌봄의 틈새를 공교육 체계 안에서 메우기 위해서 전국 5개 시·도교육청(인천·대전·경기·전남·경북) 총 214개 초등학교가 시범운영에 참여 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은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금년 3월 4일부터는 전국 2741개 초등 1학년을 대상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원하는 시간에 아이를 돌봐주는 늘봄학교 시행에 들어갔고, 2학기부터는 모든 초등학교(6175개)로 확대된다.

2023년 3월 돌봄교실 대기자는 약 1만 명이었는데 늘봄학교 도입으로 돌봄교실의 대기자 문제는 대부분 해소됐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는 2741개교 1학년 약 6만 6000명이 돌봄교실을 이용했으나 금년 3월 늘봄학교 도입으로 두 배 이상인 12만 8000명이 늘봄학교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대로라면 모든 초등학교에 늘봄학교가 도입되는 2학기에는 1학년의 70.2%인 24만 4000명이 늘봄학교로 흡수된다.

또한 2025년까지 ‘누구나 이용’ 대상을 초등 1~2학년으로 넓히고 2026년엔 초등 전 학년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아이들은 최대 오후 8시까지 학교에 머물 경우 석식비도 전액 지원받는다.

교육부는 ‘늘봄학교 도입으로 발생하는 신규 업무가 기존 교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현재 2741개 늘봄학교에 학교당 평균 1.3명의 행정 전담인력을 배치했다. 3월 11일 기준 기간제교원 2125명이 채용·배치됐고 약 3500명이 늘봄학교 행정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늘봄학교 초1 맞춤형 프로그램을 위한 강사로 약 1만 1500명을 확보했다.’고 한다. ‘2024년 늘봄학교 추진방안’에 따라 83.2%가 외부강사, 16.8%는 희망하는 교원으로 구성됐는데 이는 시·도교육청이 외부강사 채용을 원칙으로 하되 희망할 경우 교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결과라고 한다.

필자가 최근 공부하면서 본 피부로 와닿는 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금년부터 늘봄학교 신청자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아침돌봄·오후돌봄·틈새돌봄·저녁돌봄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침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는 경기도 화성 송린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2018년 개교부터 방과후 돌봄교실을 운영했고 전교생이 1600명이다. 돌봄 신청자만 500명이 넘어 추첨제로 탈락하는 학생도 있었다. 경쟁이 높은 프로그램은 한 번 떨어지면 1년 동안 다시 지원할 수 없었다.

이에 담당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창의적인 콘텐츠가 빛을 발했다. 늘봄학교는 이런 단점을 해소했고 원하는 학생 누구나 수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사는 학부모도 역시 마음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는 그의 말에 아이 돌봄에만 몰두하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람에게 봄처럼 따뜻해지기 위한 새로운 콘텐츠를 제시했다고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돌봄의 경우, 부모의 출근시간에 맞춰 일찍 등교한 아이들이 교실 문앞에서 서성이지 않도록, 정규수업 시작 전까지 농구나 줄넘기, 피구 등으로 몸을 풀어 아이들이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놀이체육을 운영하는데, 1~3학년과 4~6학년이 하루는 놀이체육, 하루는 디지털·AI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구성했다.

송린초 프로그램은 신체발달 프로그램부터 정서함양 프로그램, 창의성 향상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고 아이들이 관심 있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어서인지 교실 밖으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예전엔 학교 끝나면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갔는데 늘봄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 좋다고도 한다.
또한 늘봄학교에서 배움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정규수업에도 더욱 마음을 열고 참여하는 선순환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선, 단지 시간을 때우는 곳이 아닌 안전한 학교 안에서 다양한 교육으로 아이가 많이 웃고 밝아져 출근길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퇴근까지 안심하고 근무를 할 수 있어 만족하다고 한다.

늘봄학교로 폐교 위기에서 벗어난 학교도 있다. 2023년 신입생 1명에 불과했던 충남 논산 광석초등학교는 금년 타지 입학생 26명을 포함 32명이 입학했다. 아침늘봄·방과후연계형늘봄·저녁늘봄까지 내실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아침·저녁식사 제공에 등하교 차량 운영 등이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이처럼 ‘부모 돌봄’에서 ‘국가 돌봄’으로의 대전환이 시작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문제는 당초 2025년 시행하려던 정책을 1년 앞당기면서 학교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늘봄학교 운영은 기존 돌봄교실 교사가 맡을 수 없어 교원 자격이 있는 기간제 교사 채용 등 전담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교육청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프로그램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교사들이 늘봄학교 업무를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공간의 문제도 걱정이다.

한 칼럼에 ‘OECD 국가 중 학업성취도가 최상위권인 핀란드 교육의 저력은 집처럼 편안하게 조성된 학교 공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학교 전체를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기 어렵다면, 돌봄교실만이라도 오랫동안 돌봄교실에 머물 아이들 입장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교실은 실내화를 신고 있어야 하는 데다 춥고 좁아 아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편안하게 머물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시행이 선거를 의식한 ‘속도전’이라는 비판도 있다, 특히 서울의 참여율이 6.3%(38개교)에 불과해 전국 평균 44.3%에 크게 미달한 점도 제도 안착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음을 정책당국은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10년 연속 최하위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한 상황이다. 저출생의 대표적 원인은 ‘돌봄 공백’과 ‘사교육비 부담’이다.

늘봄학교가 안착하면 아이들이 돌봄 공백 때문에 학원을 순회하는 사례가 줄어들고 맞벌이가정의 경력단절을 막고 출산율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더불어 돌봄 시스템으로 출생률을 높이려는 사회적 노력은 장기적 관점에서는 일자리 고민과 병행되어야 한다. 아이를 일정 시점까지 키우는 데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 시간을 일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기업과 정부가 함께 모색해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예전보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어느 학부모의 “프로그램 수준을 보고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 같고 관찰하는 수준의 돌봄서비스만 제공한다면 사설 학원이 낫다”라는 말을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재능기부를 약속하고 “늘봄학교는 국가 돌봄 체계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만큼 섬세한 보완을 통해 국가 돌봄의 두 번째 단추도 잘 꿰질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문화예술계나 체육계 등 사회 각계가 국가 돌봄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가 자연과 국가유산을 잘 보존해 미래세대에게 잘 물려주려고 노력하는 일처럼 늘봄학교도 미래세대를 위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와 문화 강국이다. 그래서 늘봄학교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꿈을 찾아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든든한 아이들 놀이터요, 성장터가 돼야 한다.

일생 중 초등학교 기간은 계절의 봄에 해당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늘 따뜻하고 활기찬 봄이 되길 교사, 강사. 학부모 모두 한마음으로 소망할 것이다.

 

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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