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건설사들… '슈퍼 甲' 발주처와도 공사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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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건설사들… '슈퍼 甲' 발주처와도 공사비 갈등
  • 권한일 기자
  • 승인 2024.03.12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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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적 지위 대형 발주처에 맞서는 시공사들
원가율·손실 부담 눈덩이··· “할 말은 하자는 분위기”
건설 원가 급등과 시공 수익성 악화로 건설사들이 대형 발주처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갈등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권한일 기자
건설원가 급등과 시공 수익성 악화로 건설사들이 대형 발주처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갈등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한 건설현장 모습. 기사 특정 사실과 무관함. 사진=권한일 기자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부동산 경기 침체와 건설 원가 급등으로 발주처와 시공사간 공사비 분쟁이 속출하는 가운데 발주·수주, 원·하도급 체계를 가진 건설업계에 뿌리 박은 발주처와 시공사간 갑을(甲乙) 관계가 무색해지는 양상이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KT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대형 발주처와 쌍용건설·대보건설·한신공영 등 원도급사(시공)간 공사비 분쟁이 해를 넘기며 가열되고 있다.

쌍용건설은 지난 2023년 4월 준공한 'KT 판교 신사옥(도급계약액 967억원)'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 공사비 증액분 171억원을 발주처인 KT에 요구 중이다. 쌍용건설은 작년 7월부터 관련 공문을 발송한 데 이어 별다른 진전이 없자 10월 말 일시 규탄 시위와 유치권 행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KT 측이 "(원가 상승 등) 건설 시장의 환경변화를 인지하고 있고, 시공사 측의 요구사항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고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추가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급기야 쌍용건설은 이날(12일) 2차 현장 시위를 벌일 방침을 내놨고, KT의 재협상 요구로 일단 소강 국면을 맞고 있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진행 중이다. 한신공영은 지난해 준공한 '부산초량 오피스텔 개발사업(KT에스테이트 발주·도급액 519억원)'에서 공사비 급등으로 141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KT 측에 관련 공문을 수차례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국토교통부 산하 건설업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심사까지 요청했지만 발주처의 미수락으로 심사 진행은 불발됐다.

현대건설이 내년 3월 준공할 예정인 'KT 광화문빌딩 웨스트(WEST) 사옥(도급액 1800억원)'과 비슷한 시기 준공을 목표로 롯데건설이 시공 중인 '롯데캐슬 이스트폴(서울 자양동 KT부지 복합개발·도급액 6141억원)' 현장에서도 원가 상승으로 수백억원의 공사비 손실이 발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관련 기관에 따르면 건설원가는 2020년 대비 약 27% 급등했지만, 이들 현장 발주처인 KT는 공통적으로 입찰 당시 명시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을 내밀며 맞서고 있다.

업계 내 또 다른 슈퍼 갑 발주처로 불리는 LH도 시공사와 첨예한 공사비 문제를 떠안고 있다. 대보건설은 LH 발주로 시공 중인 세종 집현동 공동캠퍼스(공사비 750억원)에서 "가파른 원가 인상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10월에 이어 최근 다시 공사를 중단했다. 대보건설이 주장하는 공사비 손실 금액만 300억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LH는 "관계법령(물가상승분)에 따른 건설공사비 상승분은 작년 말 반영됐고 건물별 순차적인 비용 조정은 건설사와 합의된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건설업계에선 원가율(매출대비 원가 비중) 급등에 따른 재무 건전성 악화와 예정된 주요 발주 건들에 대한 기대감 저하로 대형 발주처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공룡 발주처에 꼼짝 못 하고 다음 발주 건만 쳐다보는 게 관행이었고, 지금도 시공사들은 발주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면서도 "손해를 감내하고 있기엔 원가 손실분이 너무 크고 업계 분위기도 할 말은 하자는 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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