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의료계 파업, 봄은 왔는데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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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료계 파업, 봄은 왔는데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 이재형 기자
  • 승인 2024.03.12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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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이재형 기자  |  봄이 오고 있다. 낮 동안 햇살이 점점 따스해 진다. 며칠 전에는 무당벌레도 발견했다. 아직 본격적인 활동시기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꽤나 성격이 급한 녀석이었나 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졌다. 나들이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지금이다.

그런데 아직 일교차가 제법 있다. 지난달 입춘이 지났지만 해가 떨어지면 공기가 차다. 봄이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비단 일교차 탓만이 아니다.

최근 대학병원 의사들이 일제히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집단행동으로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봄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반발이 전공의에서 대학교수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궁여지책이지만 신입 인턴으로라도 그 빈 자리를 채우려 했던 기대도 깨졌다. 수련의마저 임용을 포기하고 있다.

집단행동이 공감과 힘을 얻으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납득한만한 동기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명분 없는 싸움에서 비롯된 고통이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전국 12개 군병원 응급실을 개방하고 비상 진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민간인 응급환자들이 군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출입절차를 간소화하고 전용 접수창구도 마련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기대수명은 지금보다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사 수를 늘리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려는 국가적 차원의 장기 계획, 이는 그것의 시작이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이기적 기득권 수호를 멈춰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 들이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의료는 의사들의 밥벌이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지탱하는 안전장치다. 초심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지 쌓인 졸업장을 열어 그 안에 적힌 내용을 다시 확인할 때다.

인류에 봉사를 소명으로 여긴 자들은 지금 왜 침묵하고 있는가. 고개를 들어 이 사람을 봤으면 한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은 최근 ‘환자에 집중하라’는 지침을 내부에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다. 눈 앞에 환자에 집중한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요 근래 보기 어려운 호연지기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닌 사회가 됐지만 무너지지 않아야 할 기본이라는 것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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