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3분기 금리인하 점쳐지지만…다시 3%대 넘어선 물가 복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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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3분기 금리인하 점쳐지지만…다시 3%대 넘어선 물가 복병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4.03.07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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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오른 2월 소비자물가...한은 금리 인하 ‘피벗’에 찬물
기준금리 장기 동결 가능성↑..."美 인하 7월이 될수도"
소비자물가가 다시 3%대로 복귀하며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있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물가가 다시 3%대로 복귀하며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있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물가가 굉장히 울퉁불퉁하게 내려오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변동과 관련해 남긴 평가다. 울퉁불퉁하다고 표현한 건 물가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는 의미다. 장기적 추세 하락은 예상되고 있지만, 일시적 상승으로 인한 부담도 계속된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섣불리 낮출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이 총재의 말대로 물가는 울퉁불퉁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6일 발표한 ‘2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77(2020년=100)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3.1% 올랐다. ‘3’이란 숫자가 두드러진다. 1월 물가 상승률은 2.8%를 기록하며 목표치 2%를 향하는 듯 했지만 한 달 만에 3%대로 복귀한 것이다. 

3개에 1만원 수준까지 치솟아 ‘금(金) 사과’로 불릴 정도인 과일값, 서울에서 L당 1700원대를 넘긴 휘발윳값이 결국 지난달 물가상승률을 다시 3%대로 끌어올렸다.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2%대)에서 다시 멀어졌고,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피벗(통화정책 전환)’ 전망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서 물가 상승률 3%대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4월물 가격은 배럴당 78.1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6일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WTI는 3월에만 4.6% 올랐고, 올해 들어 11% 상승했다. 

물가가 되오르면서 정부는 다시 비상이 걸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부터 ‘비상대책반’을 꾸려 매일 대책회의를 열고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물가를 점검하기로 했다. 한훈 농식품부 차관은 “4월까지 204억원을 투입해 사과·대파 등 13개 품목의 납품단가 인하를 지원하겠다”며 “할인지원 예산도 대폭 늘려 가격이 전·평년 대비 30% 이상 오른 모든 품목에 대해 최대 40% 할인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6%다. 농·축·수산물 가격과 국제유가 상승 여파로 올해 초반까지 3% 수준을 유지하다 하반기 들어 2%대 초반으로 떨어진다고 전망했다. 얼마나 빨리 2%대로 진입할 수 있는지가 올해 물가 대책의 핵심인 셈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주재한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유가가 급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물가 상승률은 낮은 내수 압력 등 영향에 따라 추세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농산물 등 생활 물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물가둔화) 흐름이 매끄럽기보다 울퉁불퉁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물가 상승률이 3%대에서 등락하는 모습이 계속될 경우 한은 입장에서는 현 기준금리 3.5%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면 물가를 더 높이는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은의 금리 결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 예측도 빗나가고 있다. 올 초까지 3월에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현재는 ‘6월 금리 인하설’마저 힘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조이스 장(Joyce Chang) JP모건 글로벌 리서치 대표는 지난 5일(현지시간)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을 7월로 예상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같은 날 “미국 경제의 강세를 감안할 때 금리 인하는 시급하지 않다”라고 했다. 래피얼 총재는 연준 내에서도 비둘기(완화적 통화정책)파로 꼽히는 데도 이 같은 발언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으면 한은도 금리 인하를 결정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원화 가치 추가 하락과 외국인 투자 이탈 등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경제학계는 현재 상황을 2%대 물가 목표치를 달성하기까지 남은 마지막 구간, 일명 ‘라스트 마일(last mile)’로 본다. 한은은 지난달 펴낸 ‘최근 한국·미국·유로 지역의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흐름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주요국과 달리 농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지속해 물가 둔화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 물가 둔화 요인을 빠르게 해소하지 않으면 금리 인하 결정 시점이 시장의 기대보다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고금리 상황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경우 서민 고통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국내 대출의 부실 위험은 다른 나라보다 높은 상황이다. 국제결제은행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신용 갭은 지난해 3분기 말 10.5%포인트(p)를 기록했다. 2020년 2분기부터 10%p를 웃돌았다. 신용 갭이 10%p를 초과한 국가는 BIS 조사 대상 44개국 중 일본(13.5%p)과 한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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