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급진적 의료 개혁이 걱정되는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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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급진적 의료 개혁이 걱정되는 세 가지 이유
  • 권한일 기자
  • 승인 2024.02.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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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정부가 내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씩 늘리겠다고 발표한 지 3주가 지났다. 예상대로 전공의들은 집단 진료 거부와 파업·사직서 제출로 맞서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몫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3배 가량 많은 병상에도 불구하고 인구 1000명당 2.6명에 불과한 의사 수와 지방 의료 시스템 붕괴 현상 등 환자보다 의사와 병원이 주도하는 기형적인 현재 의료 체계를 감안할 때 의대 정원을 늘려 환자와 의사 간 접점을 넓히는 건 시대적인 요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정부가 한꺼번에 매년 2000명씩, 사실상 무기한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의료 개혁에 찬성했던 이들 조차 우려의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보게 만들고 있다.

급진적인 의료 개혁을 놓고 일각에서 제기된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말이 솔솔 나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첫째, 이공계 우수 인재들의 무더기 이탈 가능성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의사는 저임금·불평등·불안정한 일자리 등 일반 회사원들이 고민하는 부분을 한 번에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업으로 통한다.

가뜩이나 지금도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삼수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인데, 학령인구가 급속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내년부터 한꺼번에 2000명씩 의대 입학생을 늘리면 '의사몰빵'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게 분명하다. 

기술력과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은 과학·기술 분야에 국가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뛰어난 학업 성적과 좋은 두뇌를 겸비한 우수 이공계 학생들이 공대보다 의대 입학을 최우선으로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는 살려도 국가는 살려내지 못한다.

둘째, 사교육 열풍도 더해질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 발표 직후 주요 사교육업체들이 개최한 의대 입시설명회에는 수백여 인파가 몰리고 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의대 정원이 2000명 늘면 현재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생의 78.5%가 의대 진학 가능권에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대 입시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이미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물론, 내달 개강을 앞둔 대학가와 재수학원에서도 반수·N수 열풍이 불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부터 가계 지출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폭 낮추겠다고 강조했지만, 의대 정원 문제에선 사교육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셋째, 의학 교육의 질을 낮출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 의대 신입생이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급증할 예정이지만 아직 정부 재정 투입 규모나 지원 방안조차 나오지 않았다.

특히 의대 신입생 증원이 집중될 예정인 지방 의과대학들은 교수진 확보나 강의실·전용실습실·장비 추가 구비 등에 관해선 추후 학교별 배정 규모를 보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곳이 대다수다. 일선 의과대학에선 오래전부터 카데바(해부용 시신) 부족과 기초의학 교원 감소를 호소해 왔다.

정부는 의과대학이 있는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지난해에 진행한 의대 신입생 증원 희망 조사를 내세워 2000명이 넘는 증원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학교 입장에선 우수한 학생과 높은 학비를 동시에 거둬들일 수 있는 의대생 증원은 '다다익선'이라는 판단에 일단 최대치를 적어냈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윤석열 정부가 단계적인 변화 대신 급진적인 변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과거 여러 사례를 보면 급격한 법·제도 변화 이후 대체로 시행착오가 뒤따랐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의료개혁은 국민 건강 및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다. 시행착오는 최소화가 아니라 없어야 마땅하다. 

세계 최고의 의술과 시스템, 특권 의사들이 버티는 성역(聖域)과도 같은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그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이자 앞서 그 어떤 정권도 이뤄내지 못한 큰일을 현 정부가 다시 추진하고 있다. 적어도 10년쯤 흐른 뒤 이번 변화가 이 정권의 기록적인 성과로 평가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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