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안 보이는 ‘고금리 터널’…韓·美 당국 금리인하 기대감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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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안 보이는 ‘고금리 터널’…韓·美 당국 금리인하 기대감 경계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4.02.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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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물가 쇼크에 3월 금리 인하설 사실상 폐기 수순
셈법 복잡해진 한은...이창용 "인하속도 늦어질 것"
한국과 미국 중앙은행들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을 불식시키면서 고금리가 더 장기화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중앙은행들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을 불식시키면서 고금리가 더 장기화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3월 금리 인하설’이 사실상 시장에서 증발돼 자취를 감췄다. 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더이상의 동력을 잃게 됐다. 국내에서도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현실적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1월 물가 상승률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면서 연준의 첫 금리인하 시점이 5월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연준의 발목이 묶인다는 건 한은의 금리인하도 늦춰질 거란 소리가 된다.

앞서 지난 13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1% 오르면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인 2.9%를 웃돌았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3.9% 올라 시장 예상치인 3.7%를 넘었다.

물가가 예상보다 견고한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1월 지표가 발표된 직후 블룸버그 터미널이 사용자를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연준이 3월 금리를 인하할 확률은 10.6%, 5월에 인하할 확률은 26.8%로 낮아졌다. 전날보다 각각 1.7%포인트(p), 24.1%p 내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골드만삭스는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을 올해 3분기에서 3월로 앞당겨 전망한 바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서도 같은 시기 연준의 올 3월 금리 인하 확률이 70%로 높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올해 3월이 다가오자 금리 인하 기대감은 모래성처럼 완전히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비둘기처럼 보였던 파월은 매파 본색을 드러냈고, 물가도 쉽게 잡히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면서다.  

◆매파 본색 파월…추가 금리 인상설도 제기

월가도 연준의 첫 금리인하 시점을 6월로 점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 애나 웡과 스튜어트 폴은 “1월 CPI 보고서는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는 것이 순조롭지 않을 것을 보여준다”며 “연준이 5월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번 결과와 같은 징후가 계속된다면 인하시기는 더 늦춰질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왔다. 투자 전문 매체인 배런스는 2월 인플레이션도 예상만큼 낮아지지 않고, 연준에서 매파(긴축 선호)적인 발언이 잇따라 나온다면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크리스 재커렐리 인디펜던트 어드바이저 얼라이언스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연준이 금리 인상의 문을 열어둘 수 있다고 봤다.

시장은 달라진 금리 전망에 즉각 반응했다. 향후 금리의 흐름이 반영되는 미국 국채금리는 급등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13일(현지 시각) 10년물 국채금리는 4.31%로 마감하면서 작년 11월 30일(4.38%) 이후 가장 높았다. 이후 금리 상승 폭이 일부 되돌려지면서 15일 4.24%까지 내렸지만, 여전히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위험 선호 심리는 위축되는 모습이다. 13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24.63p(1.37%) 떨어진 3만8272.75로 거래를 마쳤다. 이후 15일까지 500.37p 오르면서 다시 반등했지만, 여전히 CPI 발표 전날 종가인 3만8797.38보다 낮다.

◆한은 금리인하 늦춰질 듯… “5월 FOMC 주목”

한미 금리차를 유지해야 하는 한은의 셈법은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5%로, 미국 연 5.5%(상단기준)보다 3%p 낮은 상황이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은이 먼저 금리를 낮춘다면 금리차가 더욱 커져 국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러한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 참석해 “미국의 성장세가 강하다 보니, 연준은 금리를 금방 내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통화정책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전날 FOMC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5.25~5.50%로 동결한 직후 나온 발언으로, 한은도 쉽게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5월 FOMC 이후 한은이 정책 방향도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더라도, 향후 금리 운용 방향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줄 가능성이 있어서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를 제안한 위원이 없었다고 했는데, 5월엔 인하를 요구하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라면서 “이런 변화는 연준이 조만간 금리 인하에 나선다는 신호로 해석돼 한은의 금리 인하를 유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2019년에도 한은이 연준보다 금리를 먼저 내렸다가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대내외 금리차가 10일가량 확대된 적이 있었다”면서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았는데 한은이 먼저 금리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준이 먼저 금리를 내려준다면 한은은 국내 경제상황을 보면서 적절한 시기에 금리 인하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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