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내 귀에 도청장치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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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내 귀에 도청장치를 아십니까?”
  • 이재형 기자
  • 승인 2024.02.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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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이재형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가 최근 ‘바이든, 날리면’ 논란 관련 보도를 한 문화방송(MBC) 등 방송사 3곳에 대한 의견진술을 추가했다.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외교부의 손을 들어 준데 따른 후속 조치다.

1심은 MBC가 영상에 삽입한 자막이 잘못됐다며 이를 허위보도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을 언급했는지 불명확하다면서도 ‘바이든’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다는 다소 황당한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런 사실은 없는 것 같다(?)’라고 본 것이다. MBC는 재판부의 주장일 뿐,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항소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그 해석을 두고 재판부의 판단까지 받아야 할 일인지 풍자극을 보는 것처럼 조소가 터져 나온다.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문득, 1988년 방송국 뉴스 보도 도중 괴한이 난입해 이처럼 주장한 사건이 떠오른다. 현재 기술로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로써는 말도 안되는 황당한 주장이었다. 한낮 해프닝 정도로 지나갔지만 현재도 대중들 사이에 여전히 회자된다. 이를 모티브 삼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락밴드 그룹까지 나왔다.

물론 내가 듣는 정보를 권력 주체가 모니터한다는 것과 권력이 원하는, 정보의 해석을 대중에 씹어 먹이려 한다는 측면에서 ‘바이든, 날리면’ 국면은 다소 결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통제하려 한다는 의미로 보면 맥락이 같다. 다른 생각과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못 해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독재자 히틀러나 무솔리니 등의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 전체주의는 패망했고 독일은 여전히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앞선 사례의 교훈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유명 희극인 박 모씨가 신인 시절 무서워 했다던 선배와 함께 코미디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다. 여전히 신인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지, 박씨는 무언가 불편하고 눈빛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선배 희극인이 “어딜 보는 거냐”며 박씨를 다그쳤고 박씨는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특유의 호통 개그로 “‘프리(free) 아이’야”하고 외쳤다. ‘내 눈으로 내가 보고 싶은데로 보는데 도데체 뭔 상관이냐’는 의미 정도로 해석된다.

내가 보고 듣는 데로 이해하려 하니 정보를 강제로 통제하는 코미디를 멈췄으면 한다. 내 귀는 ‘프리 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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