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發 퇴직연금 머니무브 없었다…고금리에 증권사보다 은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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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發 퇴직연금 머니무브 없었다…고금리에 증권사보다 은행으로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4.02.0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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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 증가율 은행이 증권사 2배...수익률 차별성 없어
10위권 내 은행 8곳 약진···증권사 미래에셋 1곳 그쳐
퇴직연금 시장에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되며 증권사의 선전이 예상됐지만, 고금리 영향에 은행권이 여전한 강세를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퇴직연금 시장에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되며 증권사의 선전이 예상됐지만, 고금리 영향에 은행권이 여전한 강세를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퇴직연금 시장에서 '머니무브'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디폴트옵션 시행 후 증권사들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며 전년 대비 적립금을 늘리며 선전했지만 은행권의 시장 점유율 강세가 여전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퇴직금 운용 방법을 고르지 않으면 퇴직연금 사업자가 자동적으로 사전에 지정한 포트폴리오로 운용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에 공격적인 운용으로 수익률 강점을 내세운 증권업계에 가입자가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증권사들이 매력적인 수익률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기대만큼의 선택을 못받은 셈이다.

실제 지난해 디폴트옵션 적립금액이 12조원을 돌파하는 등 큰 폭 늘어났으나 증권업계는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고금리 환경에 디폴트옵션 대부분이 초저위험으로 쏠린 데다 위험등급별 1년 수익률도 상대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다.

5일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가 공동 발표한 ‘디폴트옵션 2023년 4분기 말 기준 수익률 등 현황 공시’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상품 적립금액은 12조 5520억 원으로 3분기 대비 7조 4425억 원이 증가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상품을 결정하지 않으면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형 가입자만 대상으로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은 제외된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액의 89%는 초저위험(11조 2879억 원)으로 쏠렸다. 고금리 등으로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저위험이 6835억 원, 중위험이 4057억 원, 고위험 1749억 원 등으로 나타났다.

초저위험 비중이 커지면서 적립금 대부분이 은행으로 쏠렸다. 적립금 규모 10위권 안에 은행만 8곳이 포함됐다.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이 10위권으로 간신히 턱걸이했다. 나머지 한 곳은 근로복지공단으로 6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7월 발표까지만 해도 미래에셋(6위), 삼성증권(7위), KB증권(8위) 등이 10위권 안에 안착했으나 미래에셋증권을 제외하고 모두 밀려났다.

은행과 증권사 격차도 크게 확대됐다. 신한은행(2조 5122억 원), KB국민은행(2조 4064억 원), IBK기업은행(1조 4640억 원), 농협은행(1조 4410억 원), 하나은행(1조 3704억 원) 등이 1조~2조 원 규모의 적립금을 확보하는 동안 미래에셋증권은 1373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격차는 드러난다.

금융감독원 퇴직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은 86조 7397억원이다. 이는 전년 말(73조 5660억원)보다 13조 1737억원(17.9%) 늘어난 규모다. 시장 점유율은 22%에서 23%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은 169조 7184억원에서 198조 481억원으로 28조 3297억원(16.7%) 늘었다. 시장 점유율은 51%에서 52%로 늘면서 과반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했다.

디폴트옵션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DC형의 경우 은행의 작년 12월말 적립금은 61조6389억원으로 전년보다 8조4993억원 늘었지만, 증권사는 같은 기간 4조9999억원 증가했다. IRP는 은행이 11조1109억원 증가한 반면, 증권은 6조2918억원 늘었다. 이 영향으로 퇴직연금 사업자별 시장 점유율은 은행이 0.9%포인트 올랐지만, 증권은 0.7%포인트 상승하면서 여전히 은행 중심이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예상만큼 큰 ‘머니무브’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수익률에 있어 증권사가 은행보다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전히 안전성을 중시하는 가입자들의 성향이 굳건한 상황에서 고금리 지속으로 인해 은행이 수익률이 증권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DB형 적립금 수익률은 원리금 보장 4.44%, 비보장 8.7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적립금 상위 4개 증권사(미래에셋·현대차·한국투자·삼성증권)의 DB형 수익률은 원리금 보장 4.79%, 비보장 8.94%로, 0.4%포인트 이상 차이 나지 않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하반기 내내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저위험상품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꼽으면서 증권사 IRP 계좌를 찾아주시는 고객도 늘고 있기 때문에, 차별점을 강화할 수 있는 상품 위주로 경쟁력을 강화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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