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노동자 위한다는 중처법… '일자리 감소' 주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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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동자 위한다는 중처법… '일자리 감소' 주범으로
  • 이용 기자
  • 승인 2024.01.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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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법안 적용 안되는 직원 수 5인 미만 유지할 것"
근로자 "바쁠 수록 사고 잦아"… 무분별 법 적용으로 업무 부담 가중
2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상점가의 모습. 사진=매일일보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노동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으로, 소규모 자영업자는 물론 피고용인 사이에서도 업무 환경이 악화될 것이란 부정적 의견이 나온다.

29일 매일일보가 서울 중구 일대의 자영업자를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고용주들이 중처법 기준에 적용되지 않기 위해 일자리를 줄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본인의 영업장이 중처법 적용 대상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을지로의 한 카페 사업주는 평일 근무자(월~목) 4명은 고정 인력이고, 바쁜 주말(금~일)에만 3명을 추가로 아르바이트로 고용(주말 근무자 총 7명)해서 중처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이는 사업주가 잘못 안 사실로, '상시근로자 수가 5명'이 넘는 경우 개인 사업장도 중처법 적용 대상이다. 기간제, 단시간 등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모든 근로자가 법안에 포함되니 아르바이트생도 해당된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상시근로자 수는 △영업일 동안 일한 근로자 수에서 △영업일을 나누는 계산법을 사용한다. 해당 카페의 상시근로자 수를 계산해보자. 올해 1월 기준 (4X19)+(7X12)=160이 된다. 여기서 영업일인 31일을 나누면 5.1명이 되므로, 중처법 적용 대상이 된다. 보통 상시근로자 수를 판단해야 할 상황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1개월 전을 기준으로 한다.

사업주에게 이를 설명했더니, “그럼 주말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 그만두면 추가 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당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주말엔 7명도 부족해서 추가 채용을 바라는 형편인데, 사람을 줄이겠다니 날벼락 같은 이야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제조·건설업에 비해 사고 발생 빈도는 낮지만, 화기 등을 사용하는 만큼 큰 부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 업무량이 적은 평일에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손님이 많은 주말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에 위치한 한식당 업주는 “제조업만 해당하는 것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중처법은 음식점·숙박업 등 모든 업종 무관하게 포함된다. 해당 업종은 안전 전문인력을 별도로 둘 의무만 없다고 설명했더니 “그럼 직원이 5명 이상만 아니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아르바이트생이 대학 개강으로 그만두면 추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영업장은 일정 기간 내라면 추가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됐지만, 사업주는 “일일이 계산하기 귀찮다. 딱 4명으로만 유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노동계는 “법의 확대 시행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며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 강조해 왔다. 다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실제로는 고용주들이 법안 적용 기준을 피하기 위해 일자리를 줄이고, 결국 남은 직원들의 업무량이 가중되는 상황이 됐다.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은 크게 다칠 일이 없는데, 무분별한 법 적용으로 관련 직군만 업무 부담이 커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오히려 중처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직업군이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P씨는 “업계가 좁아서 대개 익숙한 얼굴들만 같이 일한다. 사업주와 평소 친분을 쌓아둬야 일자리를 보장받는다. 사업장의 문제점을 신고한 이력을 가진 직원을 고용할 사업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산업재해 인정 조건 중엔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인 경우’라는 항목이 있다. P씨에 따르면 현장직은 이런 사고가 흔할뿐더러, 치료 이후에도 같은 업계에서 일을 계속해야 한다. 따라서 일감을 주는 사업주가 중처법으로 처벌되면 사실상 일자리가 사라진다.

P씨는 “중처법이 사업주와 노동자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됐다. 요새 안전관리자가 걸핏하면 안전수칙을 지키라고 소리를 질러 현장에서 다툼이 잦다. 사실 안전관리자가 없을 때는 현장직들이 안전수칙을 잘 지키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도 조금 다친 정도로는 경력에 흠이 갈까 봐 산재 처리도 안 했고, 회사 측은 직원 부상 수준에 따라 업무를 융통성 있게 조정해줬다. 요새는 정말 산재 처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회사는 안전관리 의무를 다 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산재가 맞는지 철저히 검사하느라 구제도 늦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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