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통화정책 ‘시계제로’…부동산 PF 위기에 美 대선도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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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통화정책 ‘시계제로’…부동산 PF 위기에 美 대선도 변수로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4.01.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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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상반기 금리 인하 어려울것" 신중론 재확인
"섣부른 인하 시 경기부양 보다 부동산 자극" 우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현재 기준에서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한은의 통화정책이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물가상승 둔화는 예상보다 더디고, 가계부채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어서다. 부동산PF 부실이 올해 본격화될 거라는 우려도 한은의 고민을 키우고 있고, 미국 마저 대선을 앞두고 금리인하 시점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다만, 한은이 이날 기준금리 추가 인상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시사하면서 긴축은 사실상 종료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이 이전보다 낮아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물가 둔화 추세가 지속되고 국제유가, 중동 사태 등 해외 리스크가 완화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8회 연속 동결했고, 금통위원 전원 일치 의견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지난달에는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향후 3개월 동안 금리를 3.75%까지 열어놔야 한다고 했고 나머지 2명이 3.50%로 유지하자고 했으나, 이번에는 5명 모두 3.50%로 유지하자고 했다"고 부연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선 "금통위원들은 현시점에서 금리 인하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 생각한다"며 "상황을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보다는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장도 한은의 조기 금리인하를 시기상조로 보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하반기, 이르면 7월께 한은의 인하가 시작돼 연말까지 0.5∼1.0%포인트(p) 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전환)과 2%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안착, 내수 부진 등을 확인한 뒤에야 한은이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7월 첫 인하를 점치며 "소비가 하반기로 갈수록 부진할 가능성이 큰 데다, 이때쯤 서비스 중심으로 물가 상승률 하락도 뚜렷해지면서 한은의 정책 대응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도 "내수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따른 유동성 우려를 고려해 한은이 하반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미국 연준의 6월 인하를 전제로 한은의 7월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노코미스트 역시 통화정책 전환 시점을 7월로 봤다. 그는 "부동산 PF 문제로 올해 건설투자 둔화, 부동산시장 침체 위험이 커져 내수 경기가 지속적으로 억눌릴 것"이라며 "이는 수출경기 회복 효과를 상쇄하면서 한은의 올해 성장 전망 경로(2.1% 성장률)에 하방 리스크가 점차 고조되고, 이에 대한 통화정책 대응 필요성도 2분기 이후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면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점도 한은의 신중론을 부추기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대선 후보들의 선거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과 요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단 연준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발표한 전망에서 올해 3차례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같은 연준에 대해 가장 노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재 공화당 후보 중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인터뷰와 집회 연설을 통해 연준의 통화 긴축정책으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급상승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높은 금리 탓에 내 집 마련이 힘들어진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연준이 통화정책을 더욱 완화하도록 압력을 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연준은 대선 후보들이 기준금리에 대한 입장을 밝혀도 실제 통화정책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화정책은 정치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연준이 대선 후보들의 목소리를 아예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날 이 총재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와 관련 "시장 안정이 불안한 상황은 아닌 만큼 한은이 나설 때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미래에 늘어날 부동산 공급에 대한 계획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며 "부동산 PF를 연착륙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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