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韓·中·日 제약바이오 삼국시대… 한국형 ‘제갈량’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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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韓·中·日 제약바이오 삼국시대… 한국형 ‘제갈량’은 어디에 있나
  • 이용 기자
  • 승인 2023.12.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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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중국 후한 말 대륙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룬 영웅호걸들의 이야기 ‘삼국지’는 오늘날에도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는 고전이다. 재밌는 사실은 각 나라마다 인기있는 영웅이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 중국인들은 관우, 일본인은 조운(조자룡), 그리고 한국인은 제갈량(제갈공명)을 최고로 꼽는다.

각국의 제약산업을 살펴보면, 좋아하는 영웅의 성향과 상당히 유사하다. 중국의 제약산업은 복제약과 위탁 생산이 중심이다. 따라서 신약 연구개발보단 클라이언트 확보 및 사업 수주에 더 활발해 상업적으로 특화됐다. 이는 관우의 신용과 의리가 상업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특성과 잘 들어맞는다.

일본에서 조운의 인기는 장판파 전투에서 단신으로 주군 유비의 아들을 구해낸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됐다. 사실 조운의 진가는 온건한 성격에 있다. 삼국시대엔 많은 명장들이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해 하루 아침에 목이 달아나는 일이 빈번했다. 반면 조운은 뛰어난 실력에도 무리한 전쟁은 피하고 민생 경제까지 살피는 등 온건하게 살았다. 결국 그 시대엔 이례적으로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실제 일본 제약산업은 고비용-장시간이 소모되는 신약 기술을 갖춘 동시에, 수익 산업에도 충실해 기업 구조가 탄탄하다. 일본의 전통 제약기업들이 100년 동안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한국은 학구열이 높은 국가 답게 학문에 출중한 제갈량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인재가 난세의 영웅이 됐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국내 취준생과 수험생들의 공감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제약산업 뿐 아니라 국내 모든 산업군에선 제갈량형 인재를 찾기 힘들다. 직장인들과 취준생들의 능력이 부족하단 뜻이 아니라, 인재들이 재능을 발휘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수학올림피아드나 신춘문예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린 인재도 대학이 원하는 등급을 받지 못하면 대학진학이 힘들며, 상위권 대학을 졸업해도 원하는 기업에 취직한다는 보장이 없다. 원하는 대학과 기업에 입성해도, 보수적인 조직 문화 탓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결국 과학과 문학, 예술 분야에서 제갈량이 될 수 있는 우수 인재들이 수월한 취업과 안정된 직장, 고임금이 보장된 의료계를 선택하는 형국이다.

일각에선 한국의 인재들이 몰개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인재를 탓하기에 앞서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는 것이 맞다. 제약업계 진출을 꿈꾸는 인재가 당장 입시를 치르기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하는게 국내 교육의 현실이다.

기업과 대학이 ‘삼고초려’를 해도 모자랄 판이나, 이들이 인재 확보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의 경직된 고용제도와 경쟁만 추구하는 높은 대입 제도 때문이다. 한번 채용이 결정되면 여러 제약이 따르는 만큼, 기업은 인재 채용에 조심스런 입장이다. 대학 또한 초야에 묻힌 인재를 뽑고 싶어도, 이 경우 반드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므로 접수된 입시원서만 살펴봐야 하는 형편이다.

삼국지를 읽어봤다는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촉한을 건국한 ‘유비’를 최고로 꼽는단다. 유비에겐 월등한 무예나 전술은 없었지만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 등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충성을 얻어낼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과 인품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미국 제약산업 구조와 비슷하다. 미국엔 국내처럼 공개채용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자체 개발보다는 관련 기술을 가진 인재나 기업을 인수한다. 미국 대학도 한국의 수능 격인 SAT만 잘 봐선 대학에 갈 수 없다. 학업 성적이 모자라도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는다면 아이비리그 입성도 가능하다.

제약바이오가 글로벌 차세대 산업으로 선정된 지금,  현재 세계 각국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마치 삼국시대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국 문화에 특화된 방식으로 제약산업을 고도화 하면서 한국의 핵심 인재까지 끌어오는 상황이다. 국내도 산업 발전을 위해선 인재와 미래를 함께 걷겠다는 각오로 삼고초려가 필요하다.

국내 인재가 제갈량처럼 모든 학문에 능통할 필요는 없다. 인재의 성장을 저해하는 경직된 고용제도를 개선하고, 의료계로만 쏠리는 입시 시스템을 손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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