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천 년을 참은 단재 신채호의 외침 『조선상고사』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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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천 년을 참은 단재 신채호의 외침 『조선상고사』 개정판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3.12.06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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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 우리 고대사의 참모습을 찾고자 노력한 신채호의 역작
- 현대적 해설과 주석으로 새롭게 탄생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시공사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출간했다. 역사학자 김종성(옮긴이)은 작자 의도로 사실관계가 달라진 우리의 ‘불완전한 역사’를 바로잡으려 신채호가 옥중에서 서술한 ‘조선상고사’ 원문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듬어 이 책으로 재탄생시켰다.

지난 천 년간 역사가들이 감추고 축소한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다


신채호는 ‘역사는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상고사는 ‘작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라 규정한다. 특히 묘청이 유교도 김부식에 패배한 이후 이 땅에는 유교도가 득세하게 됐으며, 그 영향으로 중국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춰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됐다고 단언한다.

이는 신채호가 ‘유교도 김부식’과 그가 서술한 ‘삼국사기’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또한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는 안정복의 의견에 대해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밝힌 까닭이기도 하다.

이에 신채호는 그 당시 “현존하는 서적들을 갖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조”해 천 년 이상의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를 통해 ‘삼국사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군의 시대를 많은 부분 할애해 서술하고, ‘대중국 투쟁’의 선봉에 선 고구려의 역사를 중요하게 기록한 것 등은 ‘작자의 의도로 사실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한 그의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수립하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설립했다. 훼손된 단군의 시대를 재조명함으로써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으며, 동부여와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두 나라를 우리 민족의 근원으로 포함시켰다.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닌 요동반도에서 찾아야 한다’고 일축했다.

신채호의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는 삼국시대 서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채호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처럼 신라 중심으로 서술된 상고사를 개탄하며, 그 대신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고구려와 백제, 가야, 신라 등의 역사를 균등히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삼국사기’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백제가 ‘조선상고사’에서는 부여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중요하게 서술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단재 신채호의 독립투쟁 활동의 사상적 근간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는 ‘조선상고사’의 머리말 격인 총론에 나오는 명제다. 신채호는 계속해서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높이면 투쟁의 승자로서 미래 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반면에 ‘아’가 파멸돼 ‘아’가 ‘비아’에게 바쳐지면 투쟁의 패자로서 역사의 흔적 정도로 그치고 만다”고 강조한다. 즉,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아와 비아와 투쟁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채호는 우리 역사를 우리 민족인 ‘아’가 ‘비아’인 다른 민족과의 투쟁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이와 같은 ‘역사는 투쟁의 과정’이라는 인식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채호가 행한 다양한 독립투쟁 활동의 사상적 근간이었다.

또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기대와 달리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되는 사람들이 항상 생겨나는” 까닭을 역사로 살펴봄으로써 ‘지금’을 경계하고 ‘훗날’을 준비하고자 했다. 신채호에게 한국사 연구는 독립투쟁의 또 하나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신채호의 역사 인식과 시대 인식이 담겨 있는 ‘조선상고사’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기록이다.

지은이 신채호는 역사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1880년 충청남도에서 출생했다. 호는 단재(丹齋),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18세 때 성균관에 입학해 26세가 되던 1905년 성균관박사가 됐다. 그해 ‘황성신문’의 기자가 됐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됐다.

1907년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했고 시론, 논설 등을 쓰며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언론운동을 펼쳤다. 또한 ‘독사신론’을 포함한 역사관계 논문과 다수의 영웅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에도 힘썼다.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한 후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전념하는 한편 답사와 저술 등을 통해 상고사 연구에 힘썼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한 그는 5월 대만에서 체포돼 다롄으로 이송됐다. 1930년 10년 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으로 이감됐으며,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했다.

옮긴이 김종성은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옛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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