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알고도 당하는 지주택 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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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알고도 당하는 지주택 올가미
  • 권한일 기자
  • 승인 2023.12.0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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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이럴 줄은 몰랐다."

지역주택조합 사업 취재 과정에서 본 기자가 피해 조합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과 서울 노른자 입지에서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 과정에서 어그러져 조합원들이 수천만원에서 억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430억원대 분양사기로 논란이 된 서울 옥수동 지주택 사업에선 투자자 428명이 한 명당 1억원 가량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지난달에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장승배기 지주택 조합과 관악구 당곡역 지주택 추진위가 잇달아 파산했다.

일반적으로 지주택 사업은 일반 분양이나 정비사업에 비해 추진 과정에서 장애물 많고, 사업 투명성을 둘러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사업 대상 지역의 토지 '소유권'의 95% 이상을 확보해야 지자체에서 사업계획 승인이 가능한 점이 큰 부담이다. 이 과정에서 대출 이자 문제 등으로 조합이 파산할 가능성도 크다.

또 도시정비법을 통해 사업계획서와 자금 입출금 내역, 조합원 명부 등 주요 정보가 의무적으로 공개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과 달리, 지주택 사업은 주택법 적용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할 의무조차 없다는 제도적인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지주택 사업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성행하는 데는 기존 시행사의 토지 금융비나 시행 수익, 기타 비용을 조합이 직접 관리해 사업비가 대폭 절감된다는 장점 때문이다. 주변 일반 도급공사 아파트보다 낮은 투자비에 끌린 이들은 향후 시세 차익 등을 기대하고 사업에 발을 들이는 편이다.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실수요자들에게 매력적인 부분이다. 현행법상 무주택 세대주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 소형주택을 1채만 소유한 세대주는 지주택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지주택 사업 초반 업무대행사나 추진위원회에선 서울숲 아이파크 리버포레나 보라매자이, 상도롯데캐슬 처럼 드물게 나온 성공 사례들을 내세우거나 초역세권 등 누가 봐도 좋은 입지에서 '토지사용권'의 70~80%를 확보한 상태라고 홍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토지 사용권은 소유주로부터 땅 개발에 관한 '승낙'을 받은 것일 뿐 땅을 매입한 '소유권'과는 엄연히 다르다. 특히 사업 추진 과정에서 소위 '알박기'하는 땅 주인이 많아지면 사업이 지연되고 조합원들의 분담금도 불어나게 된다. 

사업에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현행 주택법상 지주택 사업 조합에 가입한 뒤 한 달 이내에만 탈퇴 후 예치금 전액 반환이 가능하고 이후부터는 거액의 위약금이 발생한다.

관련 법을 보면 지주택 조합 설립 및 사업 추진을 목적으로 한 계약에서 민법상 취소나 무효· 해제 사유가 있으면 조합에서 탈퇴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조합 또는 시공사의 귀책 사유를 조합원 개개인이 입증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지난 2004년부터 국내 총 지주택 사업 가운데 준공까지 성공한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 시내 지주택 조합 19곳 중 착공에 성공한 조합은 단 2곳에 그쳤다.

통계적으로 지주택 사업 중 절대다수가 준공은 물론 착공에도 이르지 못하고 실패하고 있지만 지금 이시간에도 지주택 추진 업자들은 저렴한 분양가와 일반 정비사업 대비 빠른 사업 속도를 내건 채 서민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자잿값 상승에 편승한 일부 시공사의 무리한 추가 공사비 요구와 조합 집행부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문제가 커진 현장에 투자한 조합원들 사이에선 지역주택사업이 아니라 '지옥주택사업'이라는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이제라도 통계적으로 피해자가 양산될 확률이 80%가 넘는 지주택 사업을 둘러싼 법·제도적 맹점 보완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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