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기업 프렌들리’만 믿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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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기업 프렌들리’만 믿었건만…”
  • 박주연 기자
  • 승인 2009.10.16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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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높은 압수수색과 세무조사 등 정부의 전방위 옥죄기에 ‘노심초사’

[매일일보=박주연 기자] 지난달 말을 전후로 정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정부의 사정당국과 경쟁당국이 대기업들의 ‘과거’까지 들춰내며 강도 높은 압수수색과 세무조사를 벌이며 전방위 옥죄기에 나서고 있는 것.
이에 지난 2006년 현대차그룹을 마지막으로 지난 3년여 동안 검찰수사가 중단되다시피 해온 재계에선 최근 잇단 기업수사가 ‘기업사정’의 신호탄이 아니냐며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현 정부가 애초 정책기조로 내세운 ‘기업 프렌들리’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라, 일각에서는 정부의 요구에 그동안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온 대기업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역풍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발하자 검찰은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해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 자제와 최소한의 증거물만 수집한다는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의 움직임은 전혀 그렇지않다. 대기업들에 대한 동시다발적 수사와 내사가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옥죄기, 재계 ‘당혹’

재계는 대한통운, SK건설, 두산, 대우건설, 한진 등 대기업 비리를 겨냥한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자칫 불똥이 튀지 않을까 밤잠을 설치는 분위기다.

검찰은 그동안 KT와 KTF, 효성 등에 대해 간헐적 수사를 벌여 왔으나, KT와 KTF의 경우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및 로비 의혹이 주요 수사 대상이었고, 효성은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지부진했었다.

여기에는 지난해부터는 세계적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사정도 감안됐을 것이란 평이지만, 신정부 체제가 자리 잡는 초기여서 민생안정 등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온 점도 사정이 없었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이처럼 숨을 고르던 검찰이 최근들어 대기업들의 ‘과거’까지 들춰내며 압수수색과 세무조사, 담합조사 등 강도 높은 ‘옥죄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대한통운의 부산과 마산지사에서 압수수색한 회계자료 등을 분석하면서 모 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연결고리를 캐내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이에 따라 지난 15일에는 회사자금 229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이 구속 기소됐다.

또 서울지검은 SK건설이 부산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SK건설이 부산 등지에서 시공을 하면서 비자금을 만들고 MBC 일산드라마센터를 짓는 과정에서도 비리가 있었다는 첩보를 바탕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검찰은 신동아건설의 회계관련 자료 등을 통해 자금 흐름을 분석해 왔고, 조만간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부동산 취득 내역의 부당성 혐의와 태광그룹 계열사 티브로드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이면 계약과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내사를 벌이고 있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담합 조사도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우유, 제빵 제조사들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다. SK에너지, GS칼텍스 등 4대 정유사들에 대한 압박과 함께 이들과 자회사들이 생산하는 LPG제품의 6년 여간 담합 조사를 마무리했다.

또한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에 대한 요금 인하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LG전자뿐 아니라 대한항공 등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재계는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수사 대상은 대기업 본사나 그룹이 아닌 계열사들이란 점에서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법조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대검 첩보에 따라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추가로 회계자료를 대거 확보했다는 점 등에 주목하면서 수사가 결국 대기업 수사의 종착역인 그룹 본사 수사와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여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특히, 검찰 안팎에선 일련의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정치권이나 정부기관과 유착 가능성이 높은 건설과 조선, 물류 업체를 타깃으로 삼았고 대부분 비자금 수사란 점에서 결국 정치권과 고위 공직자를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동시다발적 기업 수사에 대해 이명박 정부 차원의 기획성 수사가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의 투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 다 유동성 위기를 겪은 기업들의 구조조정 및 자구노력 역시 정부의 기대에 미온적이 반응을 보이자 재계를 ‘압박’하기 위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기업투자심리’ 위축 낳아…

그러나 재계는 이처럼 정부차원의 전방위 기업 조사는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오히려 위축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계속되는 검찰 수사에 따라 기업 관련자들의 줄 소환 등이 예상되는 가운데 ‘기업 프렌들리’만 믿고 있던 재계는 잔뜩 움츠린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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