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확한' 미래를 말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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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정확한' 미래를 말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 조현정 기자
  • 승인 2023.11.28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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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정경부 차장
조현정 정경부 차장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6‧25 전쟁과 같은 재난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같은 환난도, 모두 국민들이 강력한 의지를 발휘하며 자발적으로 이겨내 왔다. 그 바탕에는 국가와 기업의 부유함을 비난하기 보다는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생각했고, 결국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국민의 믿음은 통하지 않게 됐다. 국가와 기업의 부는 정체됐고, 국민의 믿음을 배신했다. 그럼에도 국민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인에 대한 믿음으로 미래를 꿈꾸는 성향이 크다. 물론 정치를 불신하고, 비난하지만 자신들이 신뢰하거나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믿음과 지지는 상당히 강하다.

문제는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정치인이 미래를 맡길 만한 '좋은 정치인'인가 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가 시작된 나라, 내수 시장 만으로는 경제 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나라다. 반도체를 대신할 미래 산업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탄소 문제에 대해서도 뒤처져 있다. 4차 산업 혁명의 급속한 진행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내년 총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항상 선거가 우리 미래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이번 총선은 국가와 국민 미래의 운명이 더 걸려있다. 아직까지도 여의도에서 미래를 말하는 정치인은 없지만 말이다.

현재 온라인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기사를 보자. 정치 신인·중진과의 차이를 구분하기 급급하다. 왜 중진을 교체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데, 교체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그 것이 혁신이자,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그렇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친이계(친이재명계)와 비명계(비이재명계)를 나누는 뉴스가 넘쳐나고, 친윤계(친윤석열계)와 비윤계(비윤석열계)가 대립한다. 중진이 험지에 출마하면 혁신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진정한 혁신은 대한민국 미래와 본인 지역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공천하는 것이다. 복잡한 계파 갈등의 이전투구 속에서 국민은 미래를 찾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역동성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빛이 나는 힘이다. 미래가 심연의 어둠 속으로 빠져 들고 있는 지금, 국민 개개인의 역동성이 더욱 필요한 순간이다. 이 역동성은 국민 결단이 바탕이 된다.

정치인들의 몸짓을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매일 분석하고 평가하며 예측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 정치를 투견장으로 만드는, 투견 싸움을 보듯 할 것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야 말로 미래를 정확히 이야기하는 사람을 서울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로 보내야 한다.

내 지역구 의원이,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내 분야의 전문가 출신 정치인이 어떤 미래를 말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믿어도 되는지, 구체적으로 역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지켜볼 때다. 대한민국이 닥친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야기하는 정치인을 이제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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