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속보이는 포퓰리즘, 뻔한데도 잘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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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속보이는 포퓰리즘, 뻔한데도 잘 먹힌다?
  • 안광석 기자
  • 승인 2023.11.09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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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석 건설사회부장
안광석 건설사회부장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단어에는 본디 죄가 없다.

포퓰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형태다. 정확치 않지만, 어원은 민중 내지 대중의 의미를 갖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다.

라틴어를 국어로 채용한 로마제국 법은 나폴레옹 법전과 미국헌법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 이론 완성에 일조했다. 오늘날 복권의 형태가 고안된 것도, 자영농을 위한 농지개혁이 시도된 것도 공화정 로마시대였다.

적어도 포퓰리즘의 태동기는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만큼이나 순수하고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통제해야 할 인구가 점점 불고, 부(富)뿐 아니라 욕심까지 축적되면서 포퓰리즘의 숭고한 의미는 점점 변질됐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포퓰리즘의 의미란 독재자 히틀러의 마이크 역할을 한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민중은 단순하다. 빵 한 덩어리와 왜곡된 정보만 준다면 국가에 충실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포퓰리즘의 악용은 민주주의를 완벽히 부정하는 나치즘·파시즘으로 귀결된다.

모택동이나 프랑코, 카스트로 같은 독재자들도 권력을 잡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 내지 이념을 십분 활용했다. 포퓰리즘의 무서운 점은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위 독재자들을 배출한 국가에서는 아직도 그들을 찬양하는 여론이 많다는 점이 그 예다.

국내에서도 선대의 잘못된 포퓰리즘 정책으로 후대가 고생하는 예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노인 무임승차나 1·2기 신도시정책이 그것이다.

고작 몇십만표 얻고자 번갯불 콩 튀겨먹듯 마련된 이 정책들은 관련기관 만성적자와 내부 및 사회분열, 베드타운화라는 고질병을 낳았다. 지금도 이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는 관련자들과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1표가 아까운 정치인들은 개선할 생각이 지금도, 앞으로도 1도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한 술 더 뜨니 가관이다.

최근에는 김포 서울 편입이나 공매도 한시적 금지가 이슈다. 김포가 서울 된다고 출퇴근 거리가 가까워지거나 세금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공매도 금지한다고 개미들 재산이 크게 늘 것도 아니다. 실제로 공매도로 인한 증시거품은 이틀 만에 꺼지지 않았나.

손가락만 갖다 대면 온갖 최신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면 내용을 들여다 본 순간 쓴웃음을 짓거나 이게 왜 이슈가 되나 반문하기 마련이다.

통탄할 일은 이처럼 뻔히 속 보이는 포퓰리즘 정책이 아직도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들도 스스럼없이 선거시즌 오면 비슷한 계획을 짜게 된다.

80년대 그렇게 격한 민주항쟁을 하고도 불과 몇 개 포퓰리즘 정책과 KAL기 폭파 및 평화의 댐 붕괴 같은 얼척 없는 호도에 쉽게 넘어갔던 한국인들의 DNA가 특이한 건가. 아니면 역시 수천년 역사를 가진 포퓰리즘의 저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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