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늙어가는 한국 기업들… “승계 안 하면 절반이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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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늙어가는 한국 기업들… “승계 안 하면 절반이 폐업”
  • 이용 기자
  • 승인 2023.11.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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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中企 CEO, 80%가 60세 이상… 승계문제 직면
韓상속세율 50%… OECD 국가 중 최상위권
상속세 부담에 업계 1위 강소기업 경쟁력 소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사진=중소기업중앙회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기업의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상속세법이 20년 넘게 제자리인 가운데, 중소기업들이 간신히 시장에 안착해도 상속세에 발목 잡혀 폐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중소기업의 대표자 고령화로 상속세 부담이 커지면서 가업승계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8일 중소기업중앙회가 10년 이상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 중소기업 가업 승계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업력 30년 이상 기업 중 대표자의 연령이 △60세 이상 80.9% △70세 이상은 30.5%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국내 평균 은퇴 연령은 72.3세(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2022년 발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남 65.4세, 여 63.7세)보다 높긴 해도, 중소기업 CEO 과반수가 은퇴를 앞둔 상황이다.

CEO들의 가장 큰 문제는 단연 상속세다. 업계는 국내 상속세가 해외에 비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현재 국내 상속세법에 의하면 과세표준 금액에 따라 최대 50%(최대주주 할증 시 60%)세율이 적용된다. 이 최고세율은 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고, OECD 평균(약 25%, 2022년 기준)의 2배 수준이다. 한국은 기업 승계 시 최대주주의 주식 가격에 20%를 가산해 최고세율 60%가 되므로 사실상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셈이다.

중기중앙회는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승계 활성화법'을 통과시켜 줄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청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상속세 납부기한을 연장하고, 상속세 공제율을 상향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날(7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회담자리에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경제가 정말 어려운데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며 “제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중소기업 핵심 입법과제가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내 상속세법은 대기업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삼성 오너 일가는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약 2조6000억원어치를 처분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유가증권 처분 신탁계약을 은행과 체결했다. 공시된 계약 목적은 '상속세 납부용'이다.

경제학에서는 상속세가 상속재산에 대해 단계별 누진과세를 함으로써 세 부담 없는 부의 세습을 억제해 기회균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높은 기업 가치를 지닌 대기업은 주식을 처분하는 것으로 세금을 충당할 수 있지만, 주식은커녕 보유 현금도 마땅치 않은 중소기업들은 상속세를 내지 못해 기업을 청산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1억개의 물량 중 90%를 수출하고, 미국 보잉과의 상표분쟁에서도 승리할 정도로 역사가 깊었던 ’한국판 다윗‘ 쓰리세븐은 갑자기 발생한 15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매각됐다. 유니더스는 2001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래 연간 생산 물량 11억개를 돌파하고, 제조 물량 70%를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하며 한때 콘돔 업계 세계 1위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2017년 상속세 부담으로 경영권을 매각한 이후, 관련 시장에서 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상속세의 취지가 ‘부의 배분’인데, 거둬들인 세금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에게 돌아가는지 알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기업이 직접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회공헌에 따른 상속·증여세 감면 제도'가 승계 조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해당 제도에 대해 응답자의 83.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91.8%가 해당 제도가 기업의 사회공헌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고 오너 가문이 대를 잇는 회사를 악덕기업로 몰아가는 일부 정치권의 움직임과 이에 동조하는 국민 정서도 상속 제도 개선에 발목을 잡고 있다. 오너 가문이 경영하는 H제약사 관계자는 “신약 개발처럼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는 오너 경영이 유리한 점이 분명 있다. 매년 성적표를 내야 하는 전문경영인은 눈앞의 실적 도출에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채용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외면받는 현재, 경영을 이어갈 만한 인재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 가업 승계에 대한 부정적인 면모만 부각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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