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규제라는 소금 과하면 백해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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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규제라는 소금 과하면 백해무익
  • 민경식 기자
  • 승인 2023.10.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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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민경식 기자  |  소금은 음식의 풍미를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다. 하지만,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음식이 짜고 맛이 없어진다.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발법)도 마찬가지다. 당초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제정됐지만, 과도한 규제로 인해 오히려 유통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당법은 대형 유통업체들의 지나친 골목 상권 침해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영세 상인을 보호하고 모든 유통업자의 상생 확대를 위한 차원에서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대형마트에 대해 한달에 2회씩 일요일에 영업을 쉬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유발법 도입으로 소상공인과 전통상인이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미비했다. 국내 전통시장은 2013년 1500여곳에서 작년 1300곳까지 200곳 가량 축소됐다. 게다가 전통시장은 자생력을 키우지 못해 급변하는 유통 트렌드를 따라가기 버거운 모습이 역력한데, 일부 축제장과 전통시장에선 바가지 논란 이슈까지 불거지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오히려 유발법 수혜는 이커머스와 식자재마트가 누리는 모양새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2013년 38조5000억원에 불과해던 거래액이 지난해 209조9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식자재마트도 7년만에 매출 규모만 4배 이상 치솟은 곳도 생겨났다. 입법자와 전통시장 입장에선 엉뚱한 제3자가 효과를 톡톡 거두고 있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내 3대 마트인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매장수는 2019년 423개에서 지난해 396개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이들의 업황 악화는 의무 휴업 규제는 물론 온라인 쇼핑 선호도 증가, 소비 위축 장기화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유통업체 500개사를 대상으로 올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대형마트(88)가 전체 전망치(83)를 상회하며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기준치(100)보다 낮은 수치를 드러내고 있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대형마트에 대해 옥죄지 않는 기조로 선회한지 오래다. 규제를 풀고 유통기업들간 자율 경쟁 환경을 조성하게 되면, 기업들이 자체 차별성과 서비스를 마련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이 보다 윤택한 쇼핑 경험을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형 유통기업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과 휴일 강제가 없다. 일본은 대형유통 업체의 영업제한 규제를 2000년 없앴고, 프랑스도 지난 1906년부터 이어오던 대형 유통업체 일요일·야간 영업금지 사항을 2015년 폐기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국내 유발법은 이보다 세월이 더 지난 12년차다. 효능보다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산업이 앞으로 발전해 나아가려면 해묵고 낡은 규제 사슬이 아닌 자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마련되거나 적어도 모두가 건강한 선순환 구조를 바랄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의 재확립이 전제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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