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 손은 되고, 저 손은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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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 손은 되고, 저 손은 안 되나
  • 문장원 기자
  • 승인 2023.10.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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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고 갑자기 교회의 추모예배에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지난해 오늘은 제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며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물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도 빠지지 않았다.

추도사 내용만 놓고 보면 굳이 교회라는 공간과 추모 예배라는 형식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장소만 고스란히 유가족들이 참석을 간곡히 요청한 추모식으로 옮겨 읽어도 추모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실은 유가족뿐 아니라 야 4당이 공동 주최하는 정치집회라서 안 간다고 이유를 불참 이유로 댔지만, 국가가 무고한 시민들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이 발생한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애초에 정치와 행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발생한 참사 자체가 정치적인데 이를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정치적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윤 대통령의 행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이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민 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윤 대통령은 "영애이신 박근혜 전 대통령님과 유가족분들께 자녀로서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지는 않고 자신이 직접 수사해 탄핵까지 당한 전직 대통령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게 아니다. 왜 양쪽의 손을 모두 잡아주지 않는지가 의문이다. 이 손은 되고 저 손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쪽은 정치적이고 다른 한쪽은 비정치적이어서 그런가. 전직 대통령의 손이 비정치적일 수 있는가.

단순히 우연이겠지만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한 날도 2014년 10월 29일이었다. 당시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정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던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마주쳤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쳤다. 10월 29일은 국가가, 대통령이, 권력이, 국민을 외면하는 날이라도 됐나.

윤 대통령이 진심으로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을 위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외면했던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이를 그 누구도 정치적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다. 그래야만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의 손을 잡을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의 손을 놓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윤 대통령이 가장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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