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문화 콘텐츠 유통 정책, 소비자 친화적으로 접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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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문화 콘텐츠 유통 정책, 소비자 친화적으로 접근해야
  •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 승인 2023.10.08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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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공정유통법, 소비자 피해 키울 우려
소비자 선택권 강화해 관련 시장 활성화 해야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정부와 국회가 문화 콘텐츠 유통 시장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하 문산법)은 '검정 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사건을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법안으로, 상대적 약자로 간주되는 창작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부가 콘텐츠 유통 업체와 창작자 간의 계약에 관여해 창작자에게 불리한 항목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문산법은 소비자 후생만 떨어트릴 뿐 창작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정부가 제시하는 표준 계약서를 따른다면 콘텐츠 유통 기업들은 창작자에게 더 많은 권한과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며, 계약서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는 내부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결과적으로 서비스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창작자 보호 규제가 오히려 콘텐츠의 다양성을 해칠 우려도 존재한다. 계약에 따른 의무 조항들이 늘어나다 보면 유통사 입장에서는 계약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다. 실력이 확실하고, 수익이 보장되는 창작자들에게 계약이 집중될 것이다.

반면 신규 창작자들의 시장 진입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 즉, 새로운 규제는 다양한 창작자의 등장을 막아 소비자 후생을 떨어트릴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통 기업이 등장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문산법은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대기업을 콘텐츠 공급자로 규정하고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제2, 제3의 네이버·다음카카오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규제로 인한 비용 증가는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콘텐츠 유통업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 결국 새로운 창작자의 등장뿐 아니라 다양한 유통업체의 등장에 견고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다.

강자를 규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시도는 늘 실패해왔다. 역대 정부는 전통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 마트 유통 규제를, 낙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원유 가격 연동제를,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납품 단가 연동제를 시행해 왔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을 이어온 이들 정책의 결과는 어떠한가. 하나 같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패의 이유는 자명하다. 유통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중에 우유는 남아 도는데 가격이 계속 상승하자, 소비자들은 해외에서 멸균 우유를 수입해 먹기 시작했다. 창작자를 보호하려는 정책 또한 창작자를 보호하지도 못한 채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부는 제도 도입 시 소비자 권리를 우선으로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 토론회에 참석한 문체부 담당자는 "문산법이 유통사업자와 콘텐츠 제작자 사이를 규율하는 법이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포커싱을 맞추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정부가 나서서 기업에게 돌아갈 이익을 창작자에게 주는 단순한 셈법이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 콘텐츠 시장의 기업과 창작자의 생사 여탈권은 소비자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로 인해 가격이 상승하고, 콘텐츠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면 소비자들은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는 웹 소설 시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웹툰·영화·온라인 게임·야외 스포츠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서해서는 안 된다.

문체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현재 웹소설의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1조390억원으로, 2년 만에 62%가 성장했다고 한다. '재벌집 막내 아들', '옷소매 붉은 끝동'처럼 대박 난 작품들은 정부의 보호 덕이 아니라, 창작자와 플랫폼 기업들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 결과다.

실력 있는 공급자가 살아남는 시장의 원칙을 지켜야 소비자의 권리도 보호되고, 시장도 커질 수 있다. 그 안에서 창작자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보호받을 것이다.

문산법은 입법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시장에 혼란만 주고 결론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을 떨어트리는 규제가 될 우려가 크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획일적으로 정의 내리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창작자의 실력이나 유통업의 능력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계약 자체를 표준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단순하고 손쉬운 방법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더욱 강화해 문화 콘텐츠 시장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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