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車 급발진 입증 책임, 기울어진 운동장 왜 방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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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車 급발진 입증 책임, 기울어진 운동장 왜 방치하나
  • 이상래 기자
  • 승인 2023.08.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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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래 산업부 기자.
이상래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40여 년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다.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가 법원에서 급발진으로 인정된 경우는 없었다.

자동차 사고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발발한다. 하지만 급발진 의심 사고만큼은 잘못이 운전자에게만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재판부의 최종 판단이다. 1980년 초부터 발생한 급발진 의심사고에서 자동차 제조사는 항상 무죄다.

자동차 제조사의 40년 무패(無敗) 행진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연도별 국내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 현황(2010~2022)’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급발진 의심 차량은 766건이다. 역시나 여기서 급발진으로 인정된 차량은 단 한건도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급발진이 인정받지 못한 것은 입증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급발진 의심 사고를 당한 운전자 측에서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급발진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자동차 비전문가인 운전자가 전문가인 제조사를 상대로 결함을 입증하라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 일단 40년간 입증 결과가 증명해준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에서 제조사는 운전자를 상대로 매번 이겼다.

2016년 일가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급발진 의심 사고 재판은 이러한 입증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재판부는 유족이 제시한 감정서를 객관성과 공정성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동차 명장, 자동차 관련 대학교수가 참여한 실험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객관성, 공정성이 담보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조사는 여의치 않다. 급발진 여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해 제조사의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과수의 당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자사의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입증하기 위해 나설 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 급발진 사고가 입증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제조사에 유리함을 더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급발진은 전자제어 이상으로 발생한 만큼 사고 이후 흔적이 남지 않고 재연도 불가능한 사고”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EDR은 급발진 분석 자료로 부적합하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오히려 김 교수는 “EDR 분석자료가 제조사의 면죄부로 작용하는 증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자사 자동차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제조사가 밝혀야 하는 구조다. 운전자 입증 책임인 우리와 달리 제조사에 입증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직접 자동차를 만든 제조사가 무결함을 입증하는 것이 빠르고 효과적일뿐더러 상식적일 것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기이한 승률만 산출하고 진실에 다가가기 어려운 현재의 자동차 급발진 입증 책임 구조를 바꿔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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