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폭염에 ‘생존게임’ 된 망신살 잼버리, 국가역량 집중 유종의 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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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염에 ‘생존게임’ 된 망신살 잼버리, 국가역량 집중 유종의 미를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승인 2023.08.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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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세계 최대 청소년 축제인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2023. 8. 1. ~ 8. 12.까지 12일 간의 일정으로 세계 158개국 4만 3,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Draw your Dream!(너의 꿈을 펼쳐라!)’란 주제로 전북 부안의 새만금 매립지에서 진행 중이다. 세계스카우트연맹(WOSM)이 주최한 이 대회는 세계 대전 등 극히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4년마다 만 14~17세 전 세계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선 1991년 강원도 고성 잼버리에 이어 32년 만의 대회로 우수한 한국 문화와 자연환경을 세계에 알린다는 명목으로 유치한 대규모 국제 행사로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격상승과 국위선양 나아가 국운 융성의 기회로 삼아야 했다. 

그런데‘세계 젊은이들의 야영 축제’ 본연의 역할은커녕 난민촌을 방불케 하며 ‘최악의 대회’라는 오명과 함께 세계의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서바이벌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은 ‘극한 생존 체험’이 됐다는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온열 질환 등 환자가 속출하고 시설 미비와 부실 운영으로 파행을 빚는 등 한국형 부실 행정의 총체적 국정 난맥의 ‘민낯’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7년 8월 아제르바이잔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새만금이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지난 6년간 1,082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도 사상 최악의 잼버리 대회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으니 망신살이 뻗쳤다.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임에도 조직위의 행사 준비는 미숙하고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 새만금 매립지를 부지로 정한 것부터 부적절했다. 그늘 하나 없는 간척지인 데다 농업용지로 조성한 탓에 물 빠짐이 원활하지 않아 여름 야영에 부적합하다는 논란과 우려는 이전부터 제기됐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숫자도 태부족일 뿐만 아니라 청소나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시설은 천으로만 살짝 가려놓아 옆에서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더운 날씨에 먹을 것과 마실 것까지 부족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참가자들은 조직위에서 식자재를 받아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데, 일부 구운 달걀에서 곰팡이가 피었다고 언론에 제보한 참가자도 있었다. 88 올림픽에 2002 월드컵까지 치른 나라의 국제 행사라고 하기엔 너무도 망신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대회에 참가한 158개국 4만 3,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가슴에 품었던 K팝, K푸드 등 K컬쳐(K-culture)에 대한 로망이 무참히 깨져버리게 생겼으니 더 안타깝고 가슴이 아린다.

한낮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대규모 야외 행사를 강행한 데다 주최 측의 운영 미숙까지 겹친 탓이다. 8월 2일 대회 저녁 8시부터 잼버리 영지 델타구역(대집회장)에서 열린 개영식에서만 온열 환자가 108명이나 발생하면서 안전에 비상이 걸리고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의 준비 소홀과 부실 운영에 비판이 쏟아졌다. 대회 첫날인 지난 8월 1일에도 한꺼번에 400여 명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다. 참가자가 대부분 10대 청소년이란 점을 고려하면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축제가 아니라 생존게임”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조직위는 “어느 나라 잼버리에서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참으로 안이한 판단이자 위험천만한 상황인식이 아닐 수 없다. 조직위원회가 8월 4일 영내 행사를 일시 중단하고 정부도 긴급 대응에 나섰지만, 현장엔 감염병까지 돌고 있다. 청소년 참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은 물론 행사를 축소하는 방안을 포함해 대회 운영 전반을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했다.

그러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8월 5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현장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갖고 “각국 대표단이 회의를 열고 대회를 중단하지 않고 오는 12일 폐막일까지 일정대로 계속 진행키로 정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은 참가국 158개국 중 가장 많은 4,500여 명의 청소년을 파견한 국가로, 8월 4일 저녁 야영장 철수를 결정하고, 8월 5일부터 이틀간 서울 호텔로 이동했다. 미국 대표단 1,500명도 폭염 속 허허벌판 야영장에서 제기된 건강과 안전 우려로 짐을 싸 서울의 호텔과 평택 미군기지 등으로 이동했으며, 싱가포르 대표단 67명도 야영장을 떠났다. 전체 참가자의 15%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이 조기 철수한 것은 잼버리 대회 사상 전례를 찾기 어렵다. 8월 6일 전북지역 한 스카우트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8월 2일 새벽 여성 샤워실에 태국 남성 지도자가 들어갔다는 주장이 나와 경찰이 조사에 나선 가운데 국내 참가자 80명이 잼버리 조직위원회의 성범죄 부실 대응에 항의해 조기 퇴영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미 준비 미흡과 뒷북 대응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국제적 망신과 불신을 사고도 어정쩡한 수습으로 대회를 강행한다는 것이다. 엉망진창이 된 행사 목표를 이제라도 낮추고 운영에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비상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정부가 새만금을 벗어나 타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비롯해 쿨링버스 제공이나 얼음생수 보급, 그늘막과 물놀이 시설 추가 설치, 의료인력 추가 배치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총력전을 펼치면서 온열 환자 수는 줄어들고 청소인력 930명이 추가 투입돼 위생 상태가 나아졌고, 취소된 100여 개 야외활동 대신에 전국 관광 프로그램 90개가 추가로 마련하는 데 힘입어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생채기가 너무 컸다. 따라서 대회 운영 전반에 걸쳐 따져묻고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대회를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한 만큼 정부는 안전에 최우선을 두고 참가자들의 이탈을 막고 행사를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서면서 퇴영을 결정했던 참가국들이 입장을 바꾸어 잔류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지막 한 사람의 참가자가 새만금을 떠날 때까지 안전 관리와 원활한 진행에 총력 경주해야 한다. 

부실한 운영으로 자칫 인명 사고라도 발생하면 한국의 안전에 대한 신뢰는 산산이 부서지고 국격도 크게 실추될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임을 각별 유념하여 국가역량을 총집중하여 ‘유종의 미(有終-美)’를 거둬 대한민국의 위기 대처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열악한 시설과 안일한 운영으로 시작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유연하고 발 빠른 위기관리 역량을 십분(十分) 발휘(發揮)해 마무리만큼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참가한 청소년들이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 역대 ‘최악의 대회’란 오명만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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