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심미주의 문학의 대가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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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심미주의 문학의 대가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3.08.03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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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19세기 말 오스카 와일드는 수필부터 동화,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이름을 떨치다 극작가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성공의 정점에 올랐을 때, 동성애와 외설죄로 고소당한 뒤 징역형을 선고받고, 출소 후에는 해외로 망명하여 가난과 냉대, 오욕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영국의 심장부에서 화려한 삶을 영위했던 그를 한순간에 파멸로 이끈 것 중 하나는 바로 그가 쓴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이 작품은 뛰어나게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에 눈을 뜨면서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그것들을 탐닉하다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오스카 와일드는 재판 과정에서 소설의 주요 인물인 화가 바질과 도리언 그레이의 동성애적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이 실제 남색을 행한 증거로 이용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나락의 길로 떨어진다. 그는 살아생전 불명예를 얻은 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성소수자 운동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기 시작했고, 점차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면서 그의 작품 또한 재평가받으며 위대한 작가로 거듭난다.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소설로 널리 알려진『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작가가 자신을 닮은 인물과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을 모두 담아낸 소설이다. 이에 더해 심미주의자 와일드의 예술관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 문학의 정수를 보여 주는 무수정본

아르테에서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세계를 좀 더 깊이 있고 선명하게 보여 주고자 그간 독자들이 접해 왔던 개정판이 아닌 작가가 처음 집필한 원고를 번역해 펴냈다. 시중에 수많은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1891년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개정판은 언론 및 평론가들의 비판과 그로 인한 법적 분쟁을 피하고자 초판의 내용을 수정하여 펴낸 판본이다.

아르테에서 펴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처음에 와일드가 구상했던 원고, 즉 검열이 가해지기 전인 최초의 원고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1890년에 『월간 리핀콧』에서 발표한 초판본과도 조금 다른 내용으로, 당시 잡지사에서는 와일드의 원고를 받은 뒤 성적 함의가 담긴 표현의 수위를 낮추거나 삭제해 게재했다. 이 책은 500여 단어가 삭제된 초판도 아니고, 분량을 늘리고 수정한 개정판도 아닌 무수정 원고를 번역함으로써 작가의 기획 의도를 온전히 발견할 수 있게 했다.

도덕성과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탐구한 기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아름답고 매혹적인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유명 화가 바질 홀워드가 그리는 초상화의 모델이 되어 주던 중 바질의 친구인 헨리 워턴 경을 소개받는다. 도리언에게 매료된 헨리는 청년에게 쾌락주의를 설파함으로써 욕망과 열정에 불을 지피고, 아름다움과 젊음이 생의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수줍음 많고 순수했던 도리언은 점점 헨리 경의 언변에 휘둘리면서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산다. 반면 시간이 흘러 자신이 늙고 추해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혐오감을 느끼게 된 그는 급기야 자신 대신 초상화가 늙고 추해지기를 소원한다. 도리언이 연인의 사랑을 매몰차게 거절한 어느 날, 그는 초상화 속 인물이 악마와 같은 표정을 띠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공포에 휩싸인 그는 연인에게 잔인하게 대했던 것을 뉘우치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 뒤 청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연인은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자책하는 도리언을 찾아온 헨리 경은 또다시 청년의 이기심을 자극하며 후회와 도덕심을 잠재우고, 도리언은 결국 인생을 바꿀 만한 선택을 내린다.

자신이 영원한 젊음과 쾌락을 누리는 동안, 초상화가 그의 수치심을 짊어지고 역겨운 존재로 전락하게 두는 것이었다. 도리언이 방탕한 삶을 살며 더 많은 죄악을 저지를수록, 초상은 타락한 영혼과 세월의 흔적을 보여 주는 거울로 기능한다. 이런 도리언의 변화를 안타까워한 바질은 어느 날 도리언을 찾아가 걱정 어린 충고를 하고, 초상화를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타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바질에게 증오심을 느낀 도리언은 충동적으로 바질을 살해한다.

그 후 순수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한 도리언은 살인의 유일한 증거인 초상화를 없애기로 결심한다. 그림을 칼로 찢는 순간, 도리언은 늙고 혐오스러운 얼굴을 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초상화 속 인물은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

소설은 로맨스와 공포, 마법적인 요소로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예술과 삶, 영혼과 양심, 사회 규범과 욕망에 관한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룬다.

출간 당시에 불륜, 노화, 자살, 동성애, 외설, 나르시시즘 등의 소재들이 지나치게 주목받은 데 반해 오스카 와일드의 위트와 재치가 엿보이는 문장들과 사실주의, 사회적 비판,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 등과 같은 작품의 진면목은 간과되었다.

1891년 출간된 개정판의 서문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도덕적인 책이나 비도덕적인 책 같은 것은 없다. 예술가는 윤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작가의 말에 유념하며 소설을 읽다 보면 오스카 와일드가 “내가 되어 보고 싶은 존재”라고 고백했던 인물인 도리언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극작가이자 시인 겸 소설가이다.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를 거쳐 1874년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한 뒤 심미주의와 데카당스 운동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시 「라벤나」로 옥스퍼드에서 뉴디게이트상을 받았고, 1881년 첫 번째 저서 『시』를 출간하나 평단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1884년 결혼한 후 단편 소설과 희곡에 관심을 쏟았다. 『행복한 왕자』(1888), 『아서 새빌 경의 범죄』(1891) 등의 단편집과 1891년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출간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살로메』(1894), 『진지함의 중요성』(1895) 등 희곡들을 발표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성공의 정점에 오른 1895년, 동성애 혐의로 강제 노역이 동반된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897년 출소한 뒤 프랑스로 망명하나 궁핍하게 살다가 노역으로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00년 파리의 작은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역자 김순배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국 노스텍사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비평이론학교 과정을 이수했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세기 영문학, 문학 이론과 비평, 디지털 인문학, 그래픽 소설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와 텍스트 미학』(공저), 『인문학과 인문 교육』(공저) 등이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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