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후흑(厚黑)'이 떠오르는 이상민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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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후흑(厚黑)'이 떠오르는 이상민 장관
  • 조현정 기자
  • 승인 2023.07.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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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정경부 차장
조현정 정경부 차장

예상대로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소추안을 기각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민 안전' 책임자인 장관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어서 159명의 목숨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됐다. 대응에 미흡했고,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헌재 판결문을 세세하게 뜯어보지 않더라도 이 장관은 참사의 책임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지지 않는 상황이 됐다.

공직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관행적으로 사과와 사퇴를 동반한다. 이 장관은 참사 직후 여러 차례 사과는 했지만, 끝까지 자리에서 내려오지는 않았다. 법률적‧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명분으로 야당이 탄핵안을 헌재에 제출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물론 정략적인 계산도 깔렸겠지만, 그렇다고 이 장관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갔다고 이미 발생한 참사가 되돌려질 수도 없다. 하지만 장관직에서 물러나 최소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은 더 이상 이후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책임을 져 왔다. 이 때문에 이 장관이 헌재 판결 직후 장관직을 내려놓는 게 맞았다. 헌재에 의해 중대한 법적 책임을 면했으면 못다 한 도덕적‧정무적 책임을 사의로 표하고 물러나는 것이 국민이 바랐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장관은 헌재 판결 직후 수해 현장을 방문하며 업무에 복귀했다. 장관직을 끝까지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집중 호우에 발생한 수해 역시 국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은 또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가. 헌재 판결과 이 장관의 행보를 보면 결국 그 어느 곳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다. 재난에 있어 '국가의 부재'를 국가 스스로 인정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와 이 장관을 보면서 '후흑(厚黑)'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줄임말로 '낯 두꺼운 뻔뻔함과 마음이 검은 음흉함'을 의미한다. 청나라 말기 학자 이종오는 <후흑학>에서 이 후흑이 난세를 극복하는 일종의 처세술이라고 했다. 역사의 승자들은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비굴해도 상관 없고, 욕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이 장관이 끝까지 장관직을 고수한 것을 이러한 후흑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여기에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내년 총선 출마설까지 나왔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후흑'으로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윤 대통령이 최종 후보로 당선된 직후 홍 의원은 자신의 정치 플랫폼 '청년의 꿈'에 올라온 '뻔뻔하다는 말에 윤석열이 먼저 떠오른다'는 글에 "면후심흑(面厚心黑) 중국제왕학"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어쩌면 현 정부의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이 노회한 정치인은 꿰뚫어 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뻔뻔함으로 당장의 정치적 이익은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성공한 역사적 영웅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다만 역사가 주는 다른 교훈도 있다. 결국에는 '정도'와 '순리'가 옳다는 것이다. 길게 보면 돌고 돌아서 최종 승리를 거두는 길은 '정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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