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은행의 ‘속 빈 상생’…연체‘된’이자 아닌 연체‘가산’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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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은행의 ‘속 빈 상생’…연체‘된’이자 아닌 연체‘가산’이자
  • 이보라 기자
  • 승인 2023.07.12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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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횡령사고…정직성 우선해야
이보라 금융증권부 기자

매일일보 = 이보라 기자  |  우리은행에서 횡령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9000만원 규모다. 작년에도 7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일어났다. 액수는 다르지만 이 은행은 왜 지난해에 이어 또 올해도 이런 사고가 터졌을까? 기자는 우리은행의 정직성 측면에서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싶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주 우리은행은 연체이자를 내면 연체원금을 줄여주는 지원책을 발표했다. ‘연체이자 원금상환 지원 프로그램’은 차주가 매월 납부한 연체이자를 재원으로 익월 자동으로 원금을 상환해준다. 지원 한도 및 횟수도 제한이 없다. 기자는 이 발표가 난 후부터 계속 미심쩍었다. 부실채권(3개월 이상 연체)을 매각하는 것보다 밀린 이자를 깎아주는 것이 손해를 덜 보면서도 연체율을 낮출 수 있어서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실채권은 계속 연체할 확률이 높아 채권관리 비용을 고려하면 이익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쌓기가 부담스러웠을 수 있겠다 싶었다. 당국이 대손충당금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으나 우리은행은 M&A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수 후보로 꼽히는 매물들은 사고도 남는 규모였다.

뜻밖의 결론을 얻었다. 우리은행이 말하는 ‘연체이자’는 밀린 이자가 아닌 연체가산이자였다. 연체가산이자란 지연배상금을 말하는데 차주가 이자를 연체할 경우 약정이자에 추가로 부과하는 이자다. 연체된 이자와 연체가산이자는 액수가 천지차이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연 10% 금리로 빌린다면 월 이자는 8만3000원이다. 당월 납부해야 할 이자를 제외하고 3개월간 연체됐다고 가정하면 연체된 이자는 25만원 정도다. 연체가산이자율(약정이자율에 3%를 더한 이자율이나 15% 중 낮은 금리)을 13%로 가정할 경우 연체가산이자는 3만2500원이다. 25만원과 3만2500원은 8배 가량이나 차이가 난다.

마치 우리은행은 연체이자가 밀린 이자처럼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여러 매체에서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통큰 결단’이라고 보도했다. 금융용어를 모르는 국민들은 대부분 밀린 이자로 해석했고 “빚을 안 갚은 사람이 오히려 원금을 적게 갚는다면 누가 빚을 갚겠냐”는 반응 일색이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연체이자를 국어사전적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할 거라면 ‘연체가산이자’라고 명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연배상금이라는 단어를 쓰거나 보조적인 설명을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체로 상생지원책을 발표할 때는 돌아올 혜택의 규모를 언급한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이번 연체이자 원금상환 프로그램은 약 40만명에게 금융비용 절감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며 약 5600억원 규모의 연체대출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같다’는 석연치 않은 설명이다. 하물며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연체가산이자를 지원하는 효과는 사실상 미미하다. 특히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금은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데 상환률이 매우 낮아 매각 수순을 밟게 되는 채권이다. ‘5600억원’ 중 절반도 정상화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원하는 규모는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전날 횡령사건이 터졌다. 물론 횡령사건은 다른 은행에서도 나타났다. 상반기 기업은행에서 2건, 신한‧국민‧농협은행에서 1건씩 발생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일어난 700억원 규모는 엄청난 수준으로 10년 가까이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조차 충격이었다. 그 파장이 채 잠잠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사고가 터졌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떠오른다. 사소한 허점을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법칙이다. 금융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업이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취임 후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쓰고 있다. 최근 우리은행은 내부 감사 조직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시재 관리도 강화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건 가장 기본적인 ‘정직성’이다. 거창한 대책을 내놓기보다 정직한 용어를 사용하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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