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車 급발진 입증 책임, 공정위 ‘소비자 보호’ 다시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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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車 급발진 입증 책임, 공정위 ‘소비자 보호’ 다시보길
  • 이상래 기자
  • 승인 2023.07.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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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이상래 기자.
산업부 이상래 기자.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 건수(한국교통안전공단 기준)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766건이다. 여기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우리나라는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사고 피해자·유가족이 급발진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법이 그렇다. ‘비전문가’인 사고 피해자·유가족이 ‘전문가’인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기술적인 문제인 급발진을 증명해보라는 식.

피해자 측은 직접 뛰어야 한다. 사고 관련 CCTV 영상 확보, 전문가 수소문, 변호사 선임까지…. 여기에 사고 차량을 만든 제조사에 EDR(사고 기록 장치) 등 관련 자료도 요청해야 한다.

피해자 측이 발품 팔아 자료를 모으면 이제 차량 제조사가 ‘반박’할 차례가 된다. 이렇게 진행됐고, 제조사 급발진 의심 사고 기록은 ‘무패(無敗)·전승(全勝)’이 된다.

결국 차량 급발진 입증 책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급발진을 입증하는 게 아닌 도리어 급발진 사고가 아니라는 입증을 제조사가 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유족의 국회 청원은 여섯째 만에 정족수 5만명을 채웠다.

이에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차량 급발진 입증 책임 전환에 관한 법안 논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급발진 입증 책임 전환 법 개정에 ‘급제동’이 걸렸다. 주무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대에 나선 것. 당시 논의에 참석한 공정위 관계자는 “차량 급발진 손해배상 책임 관련 입증책임 완화, 추정 요건 완화 등 이런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입증책임 전환 등은 민사소송의 기본적인 대원칙인 입증책임 분배의 ‘공평성’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꺼낸 입증책임 분배의 ‘공평성’. 지금까지 소비자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결과를 두고도 ‘공평성’ 있는 입증책임 분배라고 보는 것인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불어 차량 명장, 교수 등 전문가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현(現) 급발진 입증 책임 구조를 지적하는 데도 말이다.

이러한 공정위 입장에 국회의원들도 비판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운전자가 차량 결함을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도, 제조사가 입증하기도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며 “단순히 법리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입증을 해야 한다, 그냥 법리적인 단순한 논리만 가지고는 국민들께 다가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존재 이유는 시장경제체제 수호다. 시장 참여자는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도 있다. 공정거래법 제1조에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이라고 명시된 이유다. 공정위 스스로도 주요기능에 ‘소비자 주권 확립’이라며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만들어진 약관조항을 시정하고 표준약관을 보급함으로써 불공정 약관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방지한다”고 밝힌다.

공정위가 다시 한 번 ‘소비자 보호’를 되새길 때다. “여기서 심사를 마무리하지는 않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운전하는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윤한흥 의원의 말처럼 국회도 제동이 걸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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