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이 전문가여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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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통령이 전문가여서 두렵다
  • 문장원 기자
  • 승인 2023.07.0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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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시계를 잠깐 돌려보자.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10월. 당시 윤석열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TV토론에서 대통령의 전문성을 놓고 격돌하던 그 시점이다. 유 후보는 본인은 22년 정치를 해왔고 경제학 박사인 만큼 경제 전문가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26년을 검사로만 살아왔던 윤 후보가 과연 대통령이 될 준비가 돼 있느냐고 몰아붙였다. 유 후보는 "스스로 준비된 대통령인가"라며 윤 후보에게 물었고, 윤 후보는 대답한다. "검찰 업무라고 하는 건 기본적으로 경제와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다"

윤 후보의 요지는 이랬다. 검찰 수사는 공정거래, 금융, 노동과 관련된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검사 출신이라고 경제에 대해서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거시정책, 금융정책 등과 같은 분야는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전문가들을 많이 알고 이들로부터 전문 지식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돼 있다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검사로서 경제 사범들을 수사하고 단죄해 본 경험이면 경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당시에는 자신의 약점을 파고드는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빈궁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대선이 끝나고 윤 '후보'가 윤 '대통령'이 된 후에는 단순한 토론 전략이 아니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대통령이 된 후 단행하는 인사에서 정말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정부 요직 곳곳에 검찰 출신들이 진출했다. 심지어 국민연금 전문위원에 검사 출신을 앉히며 '상법 전문가'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이었던 이복현 전 검사가 금융감독원장이 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처'에서 '부' 승격한 국가보훈부의 수장도 검사 출신이다.

이러한 '검찰 만능주의'가 절정에 이른 것은 이른바 수능 '킬러 문항' 논란에서 나온 '대통령 입시 전문가' 발언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윤) 대통령은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입시 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봤다"며 "특히 조국(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의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말한 것이다. '수사하면 전문가'라는 소리다. 여기에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저도 교육 전문가지만 (윤 대통령에게) 제가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며 윤 대통령의 전문성을 치켜세웠다. 이 장관은 역시 자신이 대통령에게 배우는 이유로 입시 공정성에 대해 직접 큰 수사를 했던 경험을 꼽았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대통령이어서 경제와 교육 분야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나. 경제 지표는 여전히 어둡고 긍정적인 전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하반기 금융 위기론이 힘을 얻고 있다. 대통령의 과거 입시 비리 사건 경험이 수능 공정성 확보라는 결론에 귀결되는 그 아득한 간극 속에서 교육 현장은 수능 4개월 앞두고 혼란에 빠졌다. 대통령이 앞으로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를 자처할지 벌써 두렵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대통령 스스로도 거듭 강조했던 '예측 가능'한 발언과 국정 운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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