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피해자로 둔갑한 '시멘트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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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피해자로 둔갑한 '시멘트업계'
  • 신승엽 기자
  • 승인 2023.06.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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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신승엽 기자  |  드라마에서 범죄자들이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나도 피해자야"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피해자 코스프레’ 속어와 대입할 수 있다. 객관적인 인과관계보다 감정을 우선시해 가해자가 자신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청중의 판단을 조작하고 인식을 흐리기 위한 수단이다.

최근 시멘트업계는 피해자 코스프레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제품 가격 인상을 통보한 뒤 수요 업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규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용이 더 필요하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C&E와 성신양회 등은 내달부터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각 수요 업체에 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지난 2년간 네 차례 인상을 결정한 셈이다. 수요 업계와의 협상은 고려하지 않고, 인상하겠다는 의지만 통보했다.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는 시멘트 가격 인상 발표 직후 즉각 반발했다. 당초 시멘트업계는 가격 인상 명분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꼽았지만, 주요 연료인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하락했다. 제조원가의 비중으로 확인해도 전기요금(약 20%)보다 유연탄(약 40%)의 비중이 컸다. 전기요금 인상만으로는 유연탄 가격 하락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초월한 손해가 없다는 의미다. 

건설사들은 시멘트사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고, 이후 시멘트사의 명분이 변경됐다. 환경설비개선 비용 부담의 영향이라는 주장이다. 시멘트사는 환경 규제 강화로 설비를 개선해야 하지만,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후 정부를 향해 지원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규제 강화의 이면에는 시멘트사의 폐기물 활용이 존재한다. 환경기초시설업계에서는 폐기물을 활용해 에너지를 확보하는 동일 기능적 측면에서 시멘트사의 환경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존 시장의 가격대도 파괴했다. 시멘트사는 파쇄업체를 거친 이후 t당 6~7만원을 받고 폐기물을 소각한다. 기존 환경기초시설업계는 t당 20만원 수준으로 폐기물을 소각했다. 시멘트업계는 폐기물이 유연탄보다 낮은 가격대에 구매한다고 해도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시멘트사는 비용 측면에서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경우 모든 시작은 폐기물 활용 시점부터 비롯된다. 폐기물 시장의 가해자가 순식간에 피해자로 변모하는 모양새다. 시멘트 업체 스스로가 규제의 피해자 역할을 맡아 감성에 호소한다면, 환경기초시설업계를 멍들게 한 가해자는 누구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담당업무 : 생활가전, 건자재, 폐기물,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좌우명 : 합리적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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