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배짱인상 논란’ 라면업계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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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배짱인상 논란’ 라면업계는 억울하다
  • 김민주 기자
  • 승인 2023.06.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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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최근 라면업계는 정부의 라면 가격 인하 압박으로 ‘배짱인상’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라면 가격에 대해 기업들이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권고했다. 소비자단체의 압력 행사도 주문했다. 라면 기업들이 줄인상을 단행했던 지난해 9~10월 대비 현재 국제 밀 가격이 50% 안팎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격이 여전히 높단 지적이다.

서민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라면 가격 인상은 지속 문젯거리로 여겨져 온 만큼, 추 장관의 발언 이후, 라면 가격은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 사이에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실제로 2021년 8~9월에 이어 지난해 9~11월 두 차례에 걸쳐 라면값을 16~23% 인상한 바 있다. 일각에선 라면은 가격이 올라도 서민 대표 필수 소비재로 인식돼 안정적인 판매를 유지할 수 있어, 고물가 기조를 타고 가격을 무리하게 올려 잡는단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제 밀 가격 하락세는 이러한 시선에 힘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라면 업체들은 정말 배짱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실상은 현재의 날선 시각들과 다소 괴리가 있다.

추 장관의 발언은 서민 먹거리 가격 안정화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단 의지를 보여주는 제스처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적의 손가락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라면의 주재료인 밀의 국제 가격이 하락했다고 당장 값을 내리란 것은 소비자가격이 최종 책정되기까지의 수많은 이해관계와 유통과정 등을 고려하지 못한 1차원적 발상이다.

통상적으로 라면 생산과정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60%다. 이 중 밀가루의 비중은 평균적으로 약 20% 정도다. 라면업체들은 밀가루를 대한제분·삼양사·CJ제일제당 같은 제분 업체들로부터 공급받는다. 제분사들은 지난해 밀가루 공급가를 10% 이상 올렸다.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 단위로 제분사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에 라면업체들은 지난해 인상 반영분을 올해에도 지속 감수하고 있다. 밀가루 외 팜유, 농수산물, 전분, 스프 등 라면 한 봉지 값을 결정하는 재료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원재료값을 제외하면, 인건비와 물류비, 전기·수도 요금, 광고비 등 경영 제반 비용이 생산비의 나머지 40~50%를 결정한다. 서민 대표 먹거리란 죄로 정부의 표적이 됐단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는 비단 라면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코로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관계 등 다양한 대내외적 요인으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일어나며 각종 주요 원부자재들의 가격이 상승돼 공급가격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소득 창출이 밑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선 소비자 물가가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내려왔지만, 이는 전년도 5%대를 찍었을 때보다 하향한 기저효과이지, 여전히 학계에서 바라보는 정상 범위보다 높고, 사실상 그보다 더 내려가야 하는 게 맞다”며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물가가 안정됐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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