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역전세 DSR규제 완화 끝은 폭탄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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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역전세 DSR규제 완화 끝은 폭탄 돌리기
  • 나광국 기자
  • 승인 2023.06.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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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국 건설사회부 기자
나광국 건설사회부 기자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조선시대 농지의 전당(典當)제도에서 발전한 것으로 전해지는 한국의 전세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이다. 전세는 과거 금융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사(私)금융의 기능을 수행해, 집주인은 목돈 마련의 기회를 줬고 세입자에게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 같은 한국의 전세제도는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방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세는 1950~60년대 대부분의 주택이 단독주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택의 일부 사랑방이나 문간방 등을 빌려줌으로써 공(公)금융을 이용하지 못했던 서민들이 부족한 자금을 조달했던 것이다. 제도권 내 금융의 이용이 쉬워지고, 단독주택보다 아파트가 많아진 지금까지도 전세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주택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보증금은 2~4년 후 돌려줘야 할 빚이지만, 그동안 집값이 빠르게 올라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대출이자 상승으로 월세를 선호하는 수요자가 늘었고 여기에 전세사기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전세를 기피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전세 가격은 1년 전보다 대략 15% 가량 하락하면서 전세보증금 반환 대란도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전세 임대 가구(집주인)는 116만7000가구인데 전세보증금이 올 3월 수준으로 1년 전보다 15.4% 가량 떨어진 채로 유지될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반환해야 할 보증금 차액이 올해 24조2000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자 ‘전세금 반환 대출’에 한해 DSR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당장의 역전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DSR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현재 전세시장 문제의 본질은 세입자에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역전세에 대응 못 하는 임대인에게 새로운 임차인이 또 들어온다는 것이다. 결국 폭탄 돌리기다. 또 정책적으로도 대출로 키워온 전세시장 내 임대인에게 다시 대출해준다는 것은 자칫 본인의 잘못된 투자로 손실을 입은 갭투자자한테는 정책적 도움을 주는 것이어서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시적 DSR 규제 완화를 보면서 현진건 소설인 ‘술 권하는 사회’가 떠올랐다. 암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서로에게 술을 권했던. 하지만 사회적 도구로 술을 맘시는 것쯤은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술이 마치 대출로 바뀐 것 같다.

대출을 권하는 사회. 이제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다시 나라가 국민들에게 대출을 권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전세시장의 문제를 잡아나가기 위한 해결책을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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