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들 하는데…” 당국, 자전거래 위법기준 획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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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다들 하는데…” 당국, 자전거래 위법기준 획정해야
  • 김경렬 기자
  • 승인 2023.06.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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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매일일보 금융증권부 기자
김경렬 매일일보 금융증권부 기자

매일일보 = 김경렬 기자  |  지난달 말부터 금융투자업계가 뒤숭숭하다. 시장에서 일부 증권사에 불법 자전거래 의혹을 제기하면서, 금융감독원이 고강도 검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금리 급등, 채권 가격 폭락 등 상황이 악화되자 증권사들이 자전거래로 실적을 숨겼다는 입장이다.

자전거래는 금융투자사가 운용하는 펀드 또는 계정 간 자금 거래 행위다. 이러한 거래 기법은 오랫동안 업자들 사이에서 수익률 관리를 위해 관행처럼 여겨졌다. 자전거래는 금융사가 자사 펀드나 계정 간 짬짜미 매매하는 방식이다. 단기 투자 상품인 랩어카운트와 신탁 상품으로 유치한 자금을 장기채에 투자해 운용하는 경우다. 대부분 고객과 약속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장기채를 활용한다. 유사한 변칙거래로는 파킹거래가 있다. 채권을 장부에 곧바로 기록하지 않고 또 다른 거래자에게 일시적으로 보관해 두고 수수료를 지불하는 기법이다.

앞서 금감원이 자전거래 현장검사에 착수한 곳은 하나증권, 교보증권, KB증권 등이다. 신탁·랩어카운트 운용 관련 불건전 영업행위가 있었는지 들여다봤다. 오는 22일부터는 한국투자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의 신탁·랩 운용 자전거래 실태를 점검할 예정이다.

점검 대상은 향후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은 SPC 계좌에 금리 2%짜리 채권들을 넣어놓았는데 물량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NH투자증권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며 “한 증권사는 OCIO(외부위탁운용관리) 계좌에 채권을 넣어놓았다는 말이 나돈다. 1~2% 금리 채권은 티도 안난다는 생각이었다면 문제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대대적인 검사가 시작된 만큼, 이참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잡히길 바라고 있다. 그간 모든 거래를 싸잡아 불법이라고 확정짓기 애매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전거래의 경우 △수익자 요구에 따라 동일한 수익자의 투자일임 재산 간 거래 △동일한 수익자의 서로 다른 계좌(금융사)간 매매 △수익자 이익을 해칠 염려가 없는 거래 등 일부 상황에 대해선 허용하고 있다.

파킹 과정에서 왕왕 일어나는 ‘만기 미스매칭’ 전략 역시 모두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 상품 가입 고객에게 “운용자산과 신탁계약의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충분했다면 문제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미스매칭 전략이 고객에게 약속한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면 ‘대안 없는 제재’는 소비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업계와 금융당국 모두가 자정 노력에 나설 때다. 순서가 있다면 기준을 세우는 게 먼저다.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큰 잠재 리스크가 터지기 전에, 시장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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