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허무맹랑한 정보로 이득 챙기는 바이오 벤처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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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허무맹랑한 정보로 이득 챙기는 바이오 벤처 업계
  • 이용 기자
  • 승인 2023.06.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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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중세 시대 기사 전승에서는 용감한 기사(騎士)들이 괴물을 무찌르는 멋진 모험담이 종종 나온다. 성 조지가 용을 처치했다거나, 시구르드가 용을 죽이고 그 피를 뒤집어써 불사신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오늘날에는 미취학 아동조차 믿지 않을 수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그 시대 민초들은 이를 사실로 믿었다.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은 특정 계층에 한정돼 있었던 만큼, 백성들은 미지의 세계를 왕래하는 기사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모험담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이며, 이런 이야기들이 거짓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모두 당사자인 기사(귀족)들이다. 백성들은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괴이한 사건을 용감하게 처리하는 기사들의 이야기는 지배 계층의 주가를 더욱 높여줬다.

지금 우리는 누군가가 용을 죽였다고 말한다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정보란 시대에 따라 상대성을 갖는 법. 현재 많은 현대인들이 기사 전승과는 비교도 안 되는 허풍에 속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부 바이오 벤처들이 말하는 ‘혁신 기술’이다. 대기업마저 극복하지 못한 영역에 도전하는 바이오 벤처들의 행보는 일반인에겐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다.

‘설마 내가 속겠어?’라며 넘어가지 말자. 세계를 들썩였던 엘리자베스 홈즈의 ‘테라노스 사건’ 이라는 사례가 있으니까. 당시 의료계 전문가들은 손끝에서 채취한 소량의 혈액으로 질병 진단이 가능하다는 홈즈의 발표에 대해 여러 차례 의문을 제기했다. 테라노스는 기술에 대한 실험 결과나 논문 또한 없었다. 그러나 미디어와 대중들은 ‘언변 뿐인 홈즈의 모습’에 열광했고, 기업 가치는 10년 사이 30배가 뛰었다. 테라노스의 실험 결과는 결국 조작된 것으로 판명 나 주식시장에서 퇴출, 투자자들도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됐다.

국내 업계에서도 최근 실속 없는 보도자료로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벤처 바이오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령 특정 신약이 국내외 규제기관의 ‘허가 신청’을 받았다는 내용이나, 특정 질환에 대한 ‘혁신’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는 등, 사실상 기술의 완성도에 큰 연관성이 없는 자료에 대한 비판이다. 심지어 미국 FDA 및 해외 규제기관에 대한 ‘승인 대기’ 소식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묵현상 국가신약개발사업단 단장은 지난 4월 기자 간담회를 통해 바이오 벤처 업계의 그릇된 마케팅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일본 유명 제약사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료를 3년 전부터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 전문가인 묵 단장이 보기엔 해당 벤처의 자료는 그야말로 ‘기사가 용을 죽인 이야기’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을 터다.

중세 기사에 대한 거짓 무용담이 기사 계급의 가치를 높여줬듯이, 신약에 대한 과장된 보도자료로 가장 이득을 얻고, 진실 여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해당 기업이란 뜻이 된다.

의료기술에 대해 일반적인 지식만 가진 투자자 입장에서는 보도자료가 자주 보일수록 일단 학술적인 영역에서 뭔가 발전되는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또 언론에 관련 자료가 노출된다면 무게감과는 관계없이 신뢰성까지 오른다. 이는 곧 투자 심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부도덕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기업도 문제지만, 보건 의료기술의 가치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건 이를 실어주는 미디어와 비판없이 수용하는 투자자도 똑같다. 기업-미디어-대중 모두 기술 개발의 최종 가치가 ‘주가 놀음’이 아니란 걸 명심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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