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車 급발진 입증 책임, 누구에게 있는 게 상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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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車 급발진 입증 책임, 누구에게 있는 게 상식적일까?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3.06.1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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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현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 김명현 기자  |  잇단 급발진 의심 사고로 소비자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불안의 근원지는 사고 결과가 치명적이라는 점과 함께 원인 규명을 소비자가 해야 한다는 절망감이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상 차량 결함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유족은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면서도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무섭다"라며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아들을 잃었다는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발품을 팔아 50개가 넘는 CCTV 영상을 확보하면서 느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강릉 사고 건을 두고 다수의 전문가는 급발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지만 소송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안갯속이다. 우리나라는 급발진 인정 사례가 단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입증 부족'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40년간 급발진 관련 연구를 해왔다는 한 자동차 전문가는 다수의 급발진 사례를 언급하며 일부 지친 기색을 내비쳤다.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제도적 문제점, 소비자의 억울함 등에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이 묻어나온 것이다.

한 자동차 명장은 "다임러가 가솔린차를 처음 만들고 100년간 급발진 사고가 없었지만 자동차 센서 컴퓨터가 장착된 이후 급발진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미국과 독일에서 급발진 이슈로 사회적 파장이 일었고 우리나라도 1999년 밤 뉴스를 보면 급발진 사고가 많이 나왔다"면서 "시동이 꺼지지 않는 자동변속기가 증가하면서 급발진 현상을 도와주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 건수도 766건에 달했다.

그동안 소비자가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면 제조사는 운전자 페달 오인이라고 맞받아치는 식이었다. 소비자는 제조사의 주장처럼 조작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고 당사자의 베테랑 운전 실력을 들먹이며 운전의 완전무결함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소비자가 접근할 수 없는 차량 데이터를 가진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아님을, 페달 오인임을 보여주는 게 상식적이라는 얘기다.

급발진 의심 사고 당사자라면 결함 증명을 위해 제조사와 싸우고 있는 건지 제도와 싸우고 있는 건지 정부와 싸우고 있는 건지 누가 소비자를 보호해주는 건지 온갖 복잡한 생각이 밀려들며 세상이 원망스러울 듯하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면서다. 

국회에서는 사고 후 차량 결함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 돌리는 내용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법안 처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차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차를 위해 제조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국민 다수의 법 감정과 괴리를 보이는 사안은 실상 한두 개가 아니지만 국민 생명을 지키는 법안 마련에는 국회가 더 열심히, 더 빨리 움직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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