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단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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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단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친다
  • 배나은 기자
  • 승인 2013.11.1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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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등기이사 보수 공개안이 포함된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등기임원 전체에게 지급되는 보수총액과 평균 액수만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달 29일부터는 연간 보수가 5억원 이상인 등기이사의 개인별 보수를 근로소득, 퇴직소득, 기타소득 등 구체적인 항목으로 개별 공시해야 한다.

올해 4월 초 기준으로 2050여개 법인이 대상에 포함되며, 이중 상장사는 1663개에 달한다.

500대 기업 중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등기임원 평균연봉이 5억원 이상인 기업은 117개다. 이 가운데 대주주가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는 기업은 67개사, 인원은 60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수 공개 의무도 등기이사로만 대상이 한정돼 있어 대기업 대주주들이 등기이사직을 사퇴하고 미등기이사로 남을 경우 이들의 연봉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이건희 삼성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은 모두 미등기 임원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신세계 대주주 일가도 보수 공개 의무가 없다.

오리온 담철곤 회장과 부인 이화경 부회장, 메리츠금융지주 조정호 전 회장 등은 보수 공개 의무가 공론화되자 등기이사직을 사퇴했다.

이처럼 공개 대상을 등기임원으로 정해 미등기임원이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는 입법과정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일단 시행부터 해 보고 문제가 드러나면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특히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사회적 합의’와 ‘입법과정을 통한 단계적 개선’이다. 여기서 사회적 합의란 재벌그룹 등기임원들을 보수를 공개해야 할 만큼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의지대로 일단 시행 후 점진적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것도 제도를 정착시키는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벽 한 면에 소도 도둑도 모두 지나다닐 수 있는 큰 구멍이 뚫린 외양간을 만들어 놓고 ‘일단 울타리는 세웠으니 두고 보라’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우려도 기우로만 치부할 일은 아닐 것이다.

또 금융당국이 말한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여론이 나쁘면 보완하겠다는 눈치작전을 펼치겠다는 것으로 오인되지 않으려면 직접 나서서 해당 개정안의 구멍을 보수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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