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생·공생한다는 착각, 기생·포식이라는 진실
상태바
[기자수첩] 상생·공생한다는 착각, 기생·포식이라는 진실
  • 김원빈 기자
  • 승인 2023.05.18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통중기부 김원빈 기자.
유통중기부 김원빈 기자.

매일일보 = 김원빈 기자  |  자연세계에는 삶을 지속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다채로운 동식물들은 상생, 공생, 기생, 포식 등의 방법 중 자연선택에 의해 부여된 가장 적합한 방식에 순응하며 나름의 삶을 꾸려간다. 

인간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예절, 전통, 법률 등 개념, 체계와 같은 고상한 포장지로 우리 자신의 삶을 포장하고는 한다. 지난 수천 년간 진행된 인간 역사에서 인류는 왕정, 독재정, 민주정 등 다양한 형태의 ‘포장지’를 갈아 끼우고는 했지만,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본질은 단 한 번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우리 역시 서로를 필요에 의해서 상생, 공생, 기생, 포식하면서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며 삶을 지속할 뿐이다. 

지난 16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서울 서대문구 일대에서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소상공인을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가능태(可能態)로 보겠다는 게 정책의 골자다. 기업가형 소상공인을 육성해 한국판 ‘스타벅스’, ‘나이키’, ‘에르메스’ 등을 만들어 내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담겼다.

그러나 정책에는 가능성 충만한 ‘씨앗’이 누구나 탐낼 ‘작고 아름다운 꽃’으로 거듭났을 때 이들이 뿌리째 뽑히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실제 기업가형 소상공인이 육성된 이후 이들이 또 하나의 스타벅스, 나이키로 거듭나기까지 어떻게 사업을 유지하며, 지켜나가게 도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대희 중기부 소상공인정책실장은 대기업·플랫폼으로부터 기업가형 소상공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를 묻는 본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플랫폼은 기업가형 소상공인들과의 공생·상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인정해야 하며, 소상공인이 제대로 성장한다면, 따로 국가가 보호하지 않아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생·공생이라는 개념은 어느 한쪽의 필요에 의해서 언제든 파괴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방향적인 필요에 의해서 ‘상생·공생처럼’ 보이는 관계가 파괴된다면, 그것은 ‘기생 혹은 포식’이라는 개념적 정의에 더 부합한다.

특정 경제 주체의 성장을 통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시장방임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정책은 현 시점에서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는 지난 300여년을 거치며 ‘자유방임’과 ‘능력 기반 경쟁’이라는 두 가지 독트린만으로 유지, 설명하기에 이미 지나치게 고도화됐다.

다양한 변수가 이미 전제돼 있는 경제 체계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공정하다는 착각과 믿음을 가지고 경쟁과 출세의 선순환을 구성하기를 기대하는 정책을 수용할 만큼 수요자들은 그리 순백하지 않다.

치열한 경쟁에서 어렵게 기업가형 소상공인이라는 ‘씨앗’이 자라나도, 보호받지 못하는 새싹은 자신의 역량만으로 들판을 개척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없다. 그 꽃은 이미 주인이 있는 화단에서 주체적이라는 착각 속에 자라난 구성품 중 하나로 전락할 뿐이다.

중기부의 정책 발표를 접했다는 30대 카페 자영업자 A씨의 토로가 귓가에 맴돈다. “‘한국형 스타벅스 사장님’이 되기 이전에 끝내 ‘스타벅스 n호점 사장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이 사회의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현실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