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럽이 복지의 천국?… 대학평준화·무상의료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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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럽이 복지의 천국?… 대학평준화·무상의료의 허상
  • 이용 기자
  • 승인 2023.05.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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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프랑스의 모든 대학은 평준화라 국내 같은 학벌 갈등도, 의대 편중 현상도 없다.”, “영국은 모든 의료 서비스가 무료라 빈부격차 없이 누구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국민의 ‘평등’을 강조하며 사회 기반 시설 및 서비스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학 평준화와 영국의 무상의료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럽의 대표적인 사회 평등 제도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말 천국 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국내처럼 전문직 선호 현상, 학벌주의가 없어지고, 비싼 치료비도 내지 않아도 되니까. 다만 각국의 제도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영국은 1946년부터 70년 넘게 ‘국립의료제도(NHS)’라는 무상의료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장점도 많지만, 무상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넘쳐나는 환자와 긴 대기 시간이다. 무료니까 수요는 늘 높을 수 밖에 없는데, 의사 수는 한정돼 있다. 모든 환자에게 공평한 의료 시스템상, 먼저 응급실에 온 가벼운 찰과상 환자가 늦게 온 응급환자보다 먼저 진료받는 일은 수두룩하다. 게다가 워낙 환자가 많다 보니 의사는 증세가 가벼운 환자는 ‘그냥 돌려보내는’데 집중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영국 의료 기술의 경쟁력 저하다. 바빠서 연구할 시간도 없는 데다, 사회에 만연한 ‘공짜’ 의료라는 인식이 의사들의 발전 의욕을 잃게 만들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대학 평준화’는 국내서도 종종 거론되는 진학 제도다. 모든 대학의 수준이 똑같다면 학생들이 학벌주의로 인한 갈등에 빠지지 않을뿐더러 의과 등 취업률 높은 전공으로의 편중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국내 대학을 평준화하면, 기대와는 달리 우리 학생들은 더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평준화가 이뤄진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학비가 국내에 비해 저렴한 편이며, 수능 격인 바칼로레아에 합격할 경우 전공 선택도 자유로워 특정 학과로의 쏠림 현상도 크지 않다.

그러나 혜택이 많은 만큼, 프랑스의 입시는 고교 시절부터 여러 차례의 진학 시험을 통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만을 가려내는 데 집중돼 있다. 특히 평준화 대학 위에 사회 엘리트 양성 교육기관인 ‘그랑제꼴’이라는 명문대가 존재한다. 대학 평준화의 강제화로 평균 학업 수준이 저하됨에 따라 학생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가치가 향상된 교육기관이다.

그랑제꼴을 졸업하면 프랑스의 사회 중추에서 활약하는 엘리트가 된다. 출세가 보장된 만큼, 입시 준비는 일반 대학보다 복잡하고 학비도 훨씬 비싸 사실상 일반 학생은 꿈도 꾸기 힘들다. 국내 명문대는 재수를 하더라도 언제든 입시 기회를 노려볼 수 있지만, 프랑스는 애초에 고교 시설 소수의 선택받은 상위권만 따로 모아 그들만 명문대에 갈 수 있도록 철저히 구분돼 있다. 이에 따라 학생이 속한 사회 계층 간 체념, 질투, 갈등이 팽배한 상태다.

현재 국내의 사회 및 입시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유럽을 마냥 따르는 것이 과연 이득이 될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국내 의료 기술과 인프라 부족을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된 기술 산업은 국민들의 교육열과 산업계의 경쟁으로 달성한 성과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경쟁의 단점만 부각시키고 과거의 성장동력을 저버리는 하향 평준화를 강조한다면, 가열된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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