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술탈취 행위, 단순한 ‘갑질’ 문제 아니다
상태바
[기자수첩] 기술탈취 행위, 단순한 ‘갑질’ 문제 아니다
  • 김혜나 기자
  • 승인 2023.05.14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 김혜나 기자  |  “(소송에서)결국 최종 승소를 해서 60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변호사 비용이 1억 넘게 들어갔다. 의미가 없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아이디어 및 기술탈취 구제를 위한 피해 중소기업 간담회’에서 한 피해 기업 대표는 이렇게 토로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기술과 아이디어다. 그러나 이들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 것인 양 탈취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대기업의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피해 기업들은 소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다. 변호사 선임 비용 등으로 금전적 어려움도 호소하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을 얻기도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2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중소기업 기술침해 피해 건수는 280여건이었다. 피해액만 2827억원에 달했다. 주로 납품·수출·계약 등 거래 관계나 사업 제안 등 피해 기업이 예방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과정에서 발생했다.

가해 기업들은 자본력을 등에 업고 협력이나 투자를 빌미로 접근한다. 번뜩이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했지만 그것을 상용화할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서는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한 기술탈취 피해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증거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증거자료 대부분이 침해자인 대기업 손에 들어 있어 증거를 수집하고 침해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 또한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제출 거부가 빈번해 입증이 어렵고, 기술탈취 관련 법률과 소관부처가 산재한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증거 수집이 어려워 피해 사실 입증도 쉽지 않다. 실제로 2018년도부터 2021년도까지 4년간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당사자계 특허심판 현황을 살펴보면,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50%, 60%, 71.5%, 75%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피해 기업은 가해 기업과 관련된 행정조사 기록 연락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피해 기업은 방어권이 없는 상태로 소송을 시작하고, 가해 기업은 쟁점을 이미 파악한 상태로 소송을 진행한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행위는 단순한 ‘갑질’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이자, 국가경쟁력마저 위기에 빠지게 만들 위기 요소다. 피해 기업의 실질적인 구제책 마련도 절실하다. 정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