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세사기와 또 한 발 늦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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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세사기와 또 한 발 늦은 정부
  • 나광국 기자
  • 승인 2023.04.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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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국 건설사회부 기자.
나광국 건설사회부 기자.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며칠 전 서울 용산대통령 집무실 앞에 청년들의 영정이 나란히 놓였다. 올해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고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한 2030대 청년들이다. 피해자가 생을 마감하면서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야도 대통령 지시에 부랴부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과도한 정쟁으로 국회가 멈춰 선 사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비극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다수의 전세사기 관련 법안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빌라왕’ 사건이 불거지자 올해 2월 부랴부랴 전세사기 방지 6대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주택도시기금법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공인중개사법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 △지방세징수법 등 6개 법과 관련된 13개 개정안이다.

문제는 발의된 법안 상당수가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 대책 중 5개 개정안이 계류돼 있는데 임차인이 거주 중인 주택은 보증에 가입한 경우에 한해 등록을 허용한 민간임대주택법, 공인중개사 자격증 및 중개소 등록증 대여 알선행위를 처벌하는 공인중개사법, 감정평가사의 부동산 관련 범죄 가담시 처벌을 강화한 감정평가법 개정안 등이다.

관련 법안을 처리했어야 하는 여야는 최근까지 ‘네 탓’ 공방을 벌였다. 뒤늦은 대책 마련에 골몰하면서 여당은 여론 비판을 피하기 위해 야당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국민의 힘은 횡행하는 전세사기 원인을 ‘문재인 정권’의 이념적 부동산 정책이라며 공세를 펼쳤다. 반대로 민주당의 경우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전세사기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날을 세웠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경매 중단 또는 유예 방안을 보고했고, 윤 대통령은 전세사기 피해 관련 경매 일정의 중단 등 대책을 재가했다. 하지만 미봉책이란 우려가 나온다. 시일을 잠시 미루는 것일 뿐 경매를 막기는 어려워서다. 정부는 피해자에게 주택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권’ 부여도 검토 중이지만 기존 채권추심제도를 무력화할 소지가 있다.

여야는 이번엔 피해 매물을 국가가 매입하는 ‘공공 매입’ 방식 도입을 놓고 공방 중이다. 그런데 지금 그럴 시간이 있을까. 극단적 선택을 하는 네 번째, 다섯 번째 피해자가 나와야 책임 공방을 멈추고 피해자 대책 마련에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선 사고가 발생하고 피해자가 나오면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지만 그 마저도 졸속 대책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꿈이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세계 몇 나라에 없는 전세제도를 활용해 꿈을 키운다. 그런데 지금은 전세가 두려워 목돈 마련을 포기하고 월세를 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전세라는 제도의 장점도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는 서민들과 청년들이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고, 정쟁이 아닌 국민을 위한 대안을 발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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