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승객 잡아먹는 플랫폼, 누구를 위한 매개(媒介)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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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승객 잡아먹는 플랫폼, 누구를 위한 매개(媒介)인가
  • 김원빈 기자
  • 승인 2023.04.1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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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중기부 김원빈 기자.
유통중기부 김원빈 기자.

매일일보 = 김원빈 기자  |  플랫폼(승강장)은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공간을 의미한다. 플랫폼이 승객의 편리한 열차 이용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역할한다면, 존재 이유가 크게 반감된다.

플랫폼의 개념에는 승객과 열차 이용을 연결하는 매개(媒介)의 의미가 담지돼 있다. 플랫폼이 그와 같은 역할을 포기하거나 월권하는 것은 자기 개념의 부정이자 스스로의 존재를 기만하는 행위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산업계에는 ‘플랫폼 열풍’이 불고 있다. 배달·대중교통 등을 넘어 심지어 재능·취미 등의 영역까지 플랫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들다. 이 가운데 일반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야 중 하나는 배달 플랫폼이다.

배달의민족은 최근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담은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2조9471억원, 영업이익 4241억원의 ‘잭팟’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배달 수요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며 ‘표정관리’에 나선 모양새지만, 배달 플랫폼이 완숙한 ‘산업’으로 자리했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배민을 제외한 관련 당사자들은 모두 울상이다.

일반 소비자는 이제 배달 음식을 먹기 위해 5000원 내외의 ‘배달비’를 지불하게 됐다. 따뜻한 음식을 조금이나마 편리하게 접하고자 하는 욕구조차 플랫폼의 ‘돈 되는’ 영역으로 전락했다. 배달비라는 개념이 생소한 영역에 머물던 가까운 과거를 기억하는 이는 사라진 듯하다.

라이더 등 노동자는 최근 기본 배달비를 인상해달라는 시위를 진행했다. 배달 프로그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실제 이들에게 돌아가는 배달 건당 수입은 지난 몇 년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달대행업계는 연일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수렁에 빠지고 있다. 그간 배달대행업계는 배민 등 배달 플랫폼의 주문을 실제 수행하는 실질적 몸통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지금도 업계는 배달 플랫폼이 발생시킨 다양한 부수적 장애와 제도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맨몸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보행자의 안전도 날로 위협받고 있다. 이륜차가 인도, 횡단보도를 자유롭게 유랑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광경이 됐다. 배달 플랫폼들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배달과 이륜차의 급증을 어떤 산업과 주체가 야기했는지에 대해 고민해본다면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가는 거금 속 사회적 책임과 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그곳에는 이윤 창출을 위해 불필요한 영역의 편리함을 ‘사업화’ 하는 기업가 정신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플랫폼은 무엇을 ‘생산’해 외재적 형태로 증명하는가. 어떤 지점에 노동력을 투사해 어떤 상품과 가치를 창출하는가. 혹여나 인간의 내재화된 욕구를 자의적 기준으로 재단해 경제적 가치로 유용(流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역사가 증명하듯, 유의미한 생산과 책임 의식이 없는 산업과 기업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다.

고가의 배달비로 음식 포장을 위해 길을 나서는 보행자의 안전을 이륜차가 위협하는 모습이 이들이 꿈꾸는 ‘편리하고 혁신적인 세상’의 모습은 아니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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