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레버리지 약화… 관계개선에 치중해 성과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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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레버리지 약화… 관계개선에 치중해 성과 미흡"
  • 염재인 기자
  • 승인 2023.04.03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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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3인 매일일보 인터뷰…한·일 관계 주요 이슈 분석 및 전망
'제3자 변제안' 불가피한 측면 있지만, 일본 면죄부·외교 범위 한계
교과서 내용 왜곡 사태, 윤 정부 '외교 참사'와 연관 짓기엔 무리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달 28일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어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현행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돼 있는 자료사진 설명을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바꾼 도쿄서적 6학년 사회 교과서. 위쪽이 현행 교과서. 사진=연합뉴스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달 28일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어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현행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돼 있는 자료사진 설명을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바꾼 도쿄서적 6학년 사회 교과서. 위쪽이 현행 교과서.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윤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골자로 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안과 한·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양국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의 전향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 탓에 전반적인 대일 외교 성과는 초라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피해자와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뒤로하고 강행한 '제3자 변제안'의 경우 가해자인 일본 전범 기업에 사실상 면제부를 주는 결과를 낳으면서 도리어 일본의 당당한 외교적 태도에 직면했다. <매일일보>가 대일 외교의 핵심 쟁점인 '제3자 변제' 중심의 일제 강제징용 해법안과 일본 교과서 내용 왜곡에 대해 집중 분석하고, 이와 관련한 대응 및 전망에 대해 각자의 '묘수'를 들어봤다<편집자주>.

외교전문가들은 한·일 관계에서 대표적인 '굴욕 외교'라고 꼽히는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해법안과 관련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양국 관계 개선에 치중한 나머지 외교적 성과를 보여주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3일 매일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제3자 변제'가 상당 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협상과 시점 여부로 좀 더 우리나라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일본 피고 기업이 11년 전 사죄와 기부성 보상금을 약속한 것에서도 크게 후퇴한 것이다. '셔틀 외교'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국 방문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외교 레버리지가 크게 약화된 것은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3자 변제안'의 불가피함을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발언을 들어 피력했다. 그는 "'제3자 변제'가 아니면 방법이 없다는 게 문 전 국회의장의 얘기였다"며 "단 문 전 국회의장은 이런 방향으로 추진하려면 입법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고 설명하면서 입법 여부가 아닌 '제3자 변제' 자체를 논하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이 많지 않음을 시사했다. 

실제 문 전 국회의장은 지난 1월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윤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희상안이 상당히 반영됐다"고 하면서도 "피해자 중심에 방점이 있고 대법원 판례를 존중해서 입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게 전체 취지였다"면서 자신과 현 정부의 해법에 다소 차이가 있음을 설명했다.

'제3자 변제' 중심의 강제징용 해법안이 가장 중요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는 "'제3자 변제안'이라는 것은 한국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내용이어서 사실상 가해자인 일본의 전범 기업을 배제한 해결안"이라며 "일본 가해 기업의 책임을 완전히 면제해 주는 결과가 됐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초등교과서 한국사·독도 기술 내용 변화. 사진=연합뉴스
일본 초등교과서 한국사·독도 기술 내용 변화. 사진=연합뉴스

반면 최근 일본 교과서 내용 왜곡 논란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정부의 '굴욕 외교' 연장선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기존 일본의 일관된 역사 인식 아래 교과서는 출판사 집필 및 검정 신청, 정부의 검정 절차에 따른 검정, 채택이라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된 결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일본 교과서 내용 왜곡이 윤 정부가 초래한 일련의 '외교 참사'와 관련 있냐는 질문에 "2017년에 일본 문무성이 만든 걸 토대로 이번 교과서가 나온 것인데, 2017년에 만들었다고 2018년에 하는 게 아니다"라며 "2017년은 문재인 정권 때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가서 뭐 했냐'는 논리는 성립이 안 된다"고 전했다. 양 교수도 "이번 강제징용 해법과 한·일 정상회담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시다 정권에서 그런 것(검정 결과 시기를 늦추거나 역사 왜곡을 자제하는)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는 2014년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근현대사와 관련해 정부의 통일된 견해를 기술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교과서 검정기준을 개정했다. 독도 기술의 경우 교육과정 해설에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했다고 가르치라고 한 것은 중·고등학교는 2014년, 초등학교는 2017년이다. 이후 2021년엔 교과서에서 '종군 위안부' 대신 '위안부' 표현이, 일제의 조선인 강제노역은 "'강제 연행', '연행'이 아니라 '징용'이 적절하다"는 내용의 각의 결정이 이뤄졌다. 

또 교과서 내용 왜곡 논란을 통해 일본이 기존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의견과 함께 일본 각료회의 결정 의미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이 교과서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내용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한 뒤 "일본의 각료회의 결정은 한번 결정하면 반영구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며 "(일본이) 한번 결정한 내용에 대해서 양보하지 않는 국가라는 인식이 너무 부족한 것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과거사 문제와 안보까지 얽혀있는 대일 외교에 대해 단순히 양국 관계 개선 등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투트랙' 전략 등 보다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호사카 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그닥 피해를 보지 않아도 한반도는 중국과 붙어 있기 때문에 대만 유사시 우크라이나처럼 어마어마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을 앞에 세워서 중국에 대항하려고 하는 그런 정황들이 포착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외교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양 교수는 "대일 외교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세를 '투트랙(two track) 전략'으로 회귀해야 한다"며 "역사와 영토 문제를 안고 있는 한·일 관계는 '관리'를 기본으로 '개선'을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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