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국 독립전쟁과 부동산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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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미국 독립전쟁과 부동산 세금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1.12.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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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미국의 독립전쟁(1775~1783)은 세금이 촉발한 최대 규모의 전쟁 중 하나다. 그 출발은 점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포르투갈 등 유럽 열강이 각자의 이유로 전쟁에 뛰어들며 ‘최초의 세계대전’으로도 불리는 7년 전쟁(1756~1763)이 그것이다.

이 전쟁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은 영국은 엉뚱하게도 식민지에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재정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종전 이듬해인 1764년 영국은 미국에 세금을 왕창 매긴 설탕을 강매했다. 당시 미국의 주류는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었다.

식민지라고는 해도 두 나라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7년 전쟁에서도 미국은 영국을 도와 싸우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세금폭탄이 돌아오자 반(反)영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여전히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영국은 1765년 인지세법을 도입했다. 인지세법이란 미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나 서적, 증명서 등 종이로 만든 모든 출판물에 우표와 비슷한 모양이 인지를 사서 붙이는 것을 의무화한 법이다.
 
미국 이주민은 종이 문서를 만들 때마다 건건이 영국에 세금을 내야 했던 셈이다. 극렬한 반발로 이 법은 곧 폐기됐다. 미국 이주민 대표들은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표가 없는 상태에서 영국 의회가 독단적으로 내린 인지세법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말이 널리 알려진 계기였다. 그런데도 영국은 한 발 더 나갔다. 1767년 미국이 수입하는 차(茶)와 유리, 종이, 납, 페인트 등에 과세하자 꾹꾹 눌러 놓았던 불만이 드디어 폭발했다.

두 나라의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감정의 골은 결국 1775년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아는 데로다. 1781년 10월 영국이 항복했고 2년 뒤인 1783년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함으로써 끝이 났다.

장황하게 미국 독립전쟁사를 늘어놓은 이유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총성 없는 세금 전쟁을 치르고 있어서다. 부동산 관련 세금이 대표적이다. “불로소득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고 외쳤던 정부도 여당도 슬그머니 말을 바꾸게 할 정도로 조세에 대한 저항감은 거세다.

정부와 여당 스스로 피와 땀으로 일군 개혁 성과와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입에서 나오는 건 한숨밖에 없다. 보유세가 ‘폭탄’으로 느끼는 이는 필시 수십억원대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양도세가 과도하다고 느끼는 이는 적어도 주택을 3채 이상 가지고 있을 게 뻔하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이에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해보자.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들이 정말 세금을 낼 여력이 없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야 할 길이라면 어떤 부담이 있어도 묵묵히 가야 한다. 내가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부와 정치인들의 본분이다.

더 많은 세금을 통해 강력한 복지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거창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주택을 보유 여부를 놓고 국민을 둘로 가르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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