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폭 수습에 뒷짐 진 스포츠계 ⑤-끝 사후처방식 징계 아닌 인격 형성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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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학폭 수습에 뒷짐 진 스포츠계 ⑤-끝 사후처방식 징계 아닌 인격 형성 우선돼야
  • 한종훈 기자
  • 승인 2021.05.13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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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대회 출전금지·선수 등록 원천 봉쇄 나서
프로 입단 시, 생활기록부·학폭 서약서 제출 추진
강력한 처벌만 대부분 ‘폭력 예방’에도 중점 둬야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 사진= 흥국생명 배구단.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 사진= 흥국생명 배구단.

[매일일보 한종훈 기자] 스포츠계 학교 폭력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를 비롯해 각 종목 단체들이 근절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과거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한 사후처방식 징계성 대책에 그쳐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문체부와 교육부는 지난 2월 ‘학교운동부 폭력 근절 및 스포츠 인권 보호 체계 개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 무관용 처벌과 영구 퇴출, 피해자 법률상담 지원 등이 주요 골자다.

개선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학교 폭력을 저지른 선수는 국가대표 선발이나 대회 참가 등에 제한을 받는다. 학교 폭력 처벌 정도에 따라 일정 기간 대회 출전이 금지되며 퇴학 처분을 받은 고등학생은 선수 등록이 원천 봉쇄된다. 체육특기자 실적 평가에서 단체 경기는 개인별 평가가 가능하도록 바꿔나간다.

2022년까지 구축되는 통합 징계 정보 시스템에 학교 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항이 포함되도록 추진한다. 이를 토대로 프로스포츠 구단, 실업팀, 국가대표 등에서 선수를 선발할 때 학교 폭력 관련 이력을 확인해 선발을 제한하도록 할 방침이다.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학교 폭력 이력을 입학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점수에 반영하는 대학에는 보조금 지원 시 가점을 부여하는 등 유인체계도 도입한다. 프로 스포츠의 경우 신인 선수 선발 시 학교 폭력 이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서약서를 받는다. 드래프트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골프는 프로 테스트를 신청할 때 서약서를 받는다.

이밖에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선수가 쉽게 스포츠윤리센터에 신고할 수 있도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신고 시스템도 구축한다.

다수의 선수가 학교 폭력 의혹에 연루된 배구계도 대책을 내놨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신인 드래프트부터 과거 학교 폭력과 성범죄 등에 중하게 연루된 선수들을 전면 배제하기로 했다.

드래프트 참가 선수는 학교 폭력과 무관하다는 서약서와 더불어 해당 학교장 확인서도 제출해야 한다. 만약 허위로 밝혀질 경우 선수에게는 최대 영구제명 징계, 해당 학교는 지원금 회수 등을 조치할 계획이다. 프로야구는 드래프트 신청서에 생활기록부를 첨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책만으로는 학교 폭력 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문체부 등이 발표한 근절 대책은 근본적인 학교 폭력 예방보다 과거 사실에 대한 강력한 사후 처리적 성격을 띄고 있다.

학교 폭력을 저지르면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는 있지만 폭력을 저지른 시기와 환경에 대책 마련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한 고등학교 축구 선수 학부형은 “체육계 폭력의 근본적 원인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학교 폭력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프로 진출 제한과 신고 체계 등을 강화한다고 해도 혹시나 우리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폭력 사실을 쉽게 알릴 수 없는 구조가 문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학부형은 “만약 일이 커지면 학교와 팀에도 불이익이 가면서 문제아라고 낙인 찍힌다. 그러면 다른 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사실상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형은 “일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관련 대책을 내놓는다. 지난해 최숙현 사건도 법과 제도가 없어서 일어난 게 아니다”면서 “하지만 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고, 실행 의지가 약하기에 매번 땜질식 처방만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과거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고 해서 무조건 운동선수의 길을 막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배구 선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를 비롯해 학교 폭력에 연루된 다수의 선수들이 무기한 출전정지와 국가대표 영구제명 등의 징계를 받으며 한창나이에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학교 폭력 사실에 대한 처벌은 강하게 받되 해당 종목에서 과거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사실 십여년 전 이야기를 가지고 이제와서 징계를 내리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이런식으로 선수 생활이 중단되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폭력 사실에 대한 반성과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잘못을 갚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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