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준비 덜 된 금소법…“소비자 배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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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준비 덜 된 금소법…“소비자 배려해야”
  • 전유정 기자
  • 승인 2021.04.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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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유정 기자
사진=전유정 기자

[매일일보 전유정 기자]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고사가 있다.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얘기다. 한국 속담에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빨리 서두르면 도리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의미다.

최근 금융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지난달 25일 시행됐다. 그동안 업계에서 꾸준히 문제된 DLF(파생결합펀드), 라임, 옵티머스 사태 등 ‘불완전판매’ 행위로 인해 그 필요성이 강조돼서다. 그런데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일단 시행하고 부족한 부분은 수정해 나가자는 밀어붙이기식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금소법은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행위 금지·허위 과장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위반할 경우 금융사는 관련 수입의 최대 50%를 ‘징벌적 과징금’으로 내야 하며 판매 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소비자에게는 금융상품에 가입한 후에도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권리인 청약철회권, 위법계약해지, 손해배상 입증책임 전환 등이 주어진다.

금소법은 지난 2010년 6월 법 제정방향이 제시된 이후 10여년 가까이 국회에서 계류하다 2019년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수많은 금융피해자가 발생하고서야 관련 법안의 필요성이 공론화되면서 법률안이 통과됐다. 다만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 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금융권 현장 곳곳에선 혼란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은 일주일 전에 금소법 감독규정과 시행령을 발표했고, 시행세칙은 하루 전에서야 완성했다. 특히 금소법 시행으로 청약철회권이 확대되면서 금융사들은 철회 방법으로 문자메시지를 도입했다. 문제는 소비자가 청약 철회를 담은 문자를 누구에게 보내는지, 문자 발신자 신원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등이 업계에 규정되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전산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했는데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사가 모두 뒤집어써야 하는 셈이다. 한 펀드 가입자는 “금소법이 시행되고 뉴딜펀드 가입하기 위해 영업점을 찾았는데, 이건 검찰에 불러간 피의자나 매한가지였다. 약 2시간 가량 이어진 녹취, 문답,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명과 사인. 취조실에서 고문을 당해보진 않았지만 조서를 작성하는 직원과 취조받는 고객이었다. 이후 통장을 받고 일어서려는데 직원이 혹시 녹취가 잘못돼 검사에 지적을 받으면, 영업점에 한 번 더 방문해달라고 했다. 이게 진정 소비자를 위한 법인가 싶었다.”라고 토로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금융당국이 금소법 시행에 따른 규정 유예기간을 6개월 둔다지만 어느 업계라고 할 것 없이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라며 “은행‧증권업의 경우 투자자의 투자성향보다 높은 위험도의 펀드는 본인이 원하더라도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은 펀드에 가입하려면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나와야 하며, 추후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투자성향분석 과정도 전부 녹취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도 도입 이후 소비자보호 마련을 위해 금융사의 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가격 전가가 어려울 경우 서비스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형식적인 절차들을 더 줄여주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물론 새로운 제도가 안착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법이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금융당국이 조금 더 일찍 준비했다면 지금의 비판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법을 만들고 적용하게 된 취지가 소비자인 만큼 소비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소비자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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