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득권의 저항에 또다시 과거로 회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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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득권의 저항에 또다시 과거로 회귀하나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10.2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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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공시지가 현실화 문제가 뜨겁다.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90%까지 올리는 방안을 제시한 가운데, 야당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현실화는 사실상 서민 증세다’, ‘세금폭탄이다’ 등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많은 언론에서도 비슷한 논조로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그러나 시세보다 하향 조정된 공시가격이 보유세 실효세율을 낮추고 조세 형평성을 저해하며 부동산 투기 발생의 원인 중 하나라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정권마다 밝혀왔던 해묵은 과제다. 부동산 거품이 점차 커가던 2014년 국토교통부에선 ‘2016년부터 부동산 실거래가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가격 공시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공시가격 개선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증세’라는 프레임 앞에서 번번이 좌절됐고 지난해에서야 공시가격 산정에 실거래가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실거래가 대비 공시가격)은 토지 65.5%, 단독주택은 53.6%, 공동주택은 69.0%에 그친다. 한국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7%(2017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39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여야는 인식을 같이했었다. 지난 4월 ‘부동산공시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부동산의 적정한 가격형성과 각종 조세·부담금 등의 형평성을 도모’라는 제정 목적을 1조에 담은 법은 공시가격을 사실상 ‘시장가격’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공시가격과 시장가격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공시가격 현실화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작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발표되자 반발이 거세다. 이런 탓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지우기 어렵다.

실제로 서민에게 ‘세금폭탄’이 터지지 않아서다. 우병탁 신한은행 세무팀장의 시뮬레이션 결과 2억원대 중반 중계동 전용면적 59㎡ 아파트는 올해 재산세가 약 45만원으로 지난해보다 3만원가량 늘었지만, 2025년에는 73만원을 부담할 것으로 계산됐다. 

5년 동안 연간 재산세 증가분은 4만~6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고가 주택인 강남구 도곡렉슬 전용면적 120㎡는 올해 900만원대 초반인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2025년께 1900만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서민이 아닌 시장가격보다 하향 조정된 공시가격으로 세 부담 완화의 혜택을 누려왔을 고가 주택 보유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는 셈이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다. 비정상의 정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부가 기득권들의 저항에 또다시 한발 물러선다면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로 스스로 회귀하는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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